옷을 물려받는 것, 옷을 물려준다는 것은 꽤나 즐거운 일이다.
아이의 옷은 부모 욕심으로 샀다가
아이의 성장속도를 예측하지 못해
몇 번 입히지도 못하고 그대로 보관하다가 버리기가 일쑤인 것이다.
(중고로 내놔도 인건비도 안나옴)
그래서 이렇게나마 누군가에게 가서 생명연장이 되면
아까운 마음도 덜하고, 내 아이의 빈 옷장을 또 채우는 재미도 있다.
나는 아이가 땅에서 뒹굴며 커야한다 주의인데,
그래서 비싼고 큰 옷보다는 저렴하고 딱 맞는 옷을 사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아내는 아이의 옷을 고르고, 입히고, 사진찍는게 하나의 낙이라서
소위 '막 입히는 옷'을 잘 사지는 못한다.
결국 그 결론은, '비싸고 딱맞는 옷'을 사는 것이 된다.
그래서 한계절만 지나가도 입히지 못하는 것들이 쌓여간다.
(물론, 뒤돌아서면 커있는 우리 아들도 한 몫 하는 듯 하다)
얼마 전,
우리 아들보다 3살 많은 아들을 키우는 친구집에서
겨울이 되자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엄청나게 큰 박스를 보내왔다.
그 안에는 '거의' 새 옷이나 다름없는, 그리고 예쁜! 옷들이 가득했다.
물려받은 옷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느낀 것은,
'우리 아이가 벌써 이렇게 큰 옷을 입는다고?' 라는 것이다.
이제 영아에서 유아가 되어가는 아이의 모습에 괜시리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채우려면 비워야 하기에, 우리 아들에게 작아져 못입는 옷들을
아들의 사촌동생에게 물려주기로 한다.(내 조카라고도 부를 수 있음)
하나하나 옷을 꺼내보고, 찢어진 곳은 없는지, 얼룩은 없는지 살펴보고,
정갈하게 개어 다시 상자에 넣는 작업을 했다.
처음엔 그랬지.
하지만 점점 옷을 꺼내 살펴보는 그 작업이
우리 아이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는 추억여행 시간이 되어갔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이 옷을 입고는 어딜 갔었는데.
이 옷은 또 아끼다가 몇 번 못입혔네.
이 옷 입은 날은 무슨 일이 있었지.
더 이상 옷 정리가 아니게 된 그 시간,
옷을 보내주는게, 아이의 어린시절을 보내는 느낌마저
들어 괜히 또 시큰해졌다.
한아름 옷이 든 박스에 택배송장까지 붙이고 돌아오는 길,
우리 가족이 행복했던, 또 하나의 계절이 지나갔음에 서운함을 느꼈다.
다음 날, 아내에게 카톡이 하나 왔다.
"이 옷 어때? 어떤 색깔이 더 나아?"
역시 우리 아내는 과거에 얽메이지 않고
늘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이구나. 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