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렌은 작은 동물(little animal)
매리 앨렌(Marry Ellen)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8살 때, 엘런은 미국 뉴욕 어느 동네에서 심각한 신체적, 정서적 학대를 당한 채 발견되었다. 건물 경비원과 이웃이 양부모가 저지른 이 범죄를 세상에 알렸다.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양 엄마를 재판에 고발할 근거가 마땅치 않았다. 이 당시, 미국 뉴욕에서 학대받은 아이를 위한 적절한 법률이 없었기 때문이다.
1년 후 1874년, 동물학대 방지법을 근거로 재판이 열렸다. 엘런은 사람(person)이 아니라 작은 동물(little animal)로 간주되었다. 엘런은 양부모가 자신에게 어떤 행위를 했는지 증언하였다.
“ 친 아버지와 어머니는 모두 돌아가셨어요. 제가 몇 살인지 모르겠어요. 나는 내가 양 엄마와 함께 살지 않았던 때를 기억하지 못해요. 엄마는 거의 매일 나를 채찍질하고 때리는 버릇이 있어요. 나를 뒤틀린 채찍으로 채찍질하곤 했어요. 채찍은 항상 내 몸에 검푸른 자국을 남겼어요. 지금 제 머리에는 엄마가 만든 검푸른 자국이 있고, 이마의 왼쪽에도 가위로 인한 상처가 있어요. 그녀는 저를 가위로 때리고 베었습니다; 저는 그 누구와도 키스를 한 적이 없고, 엄마도 키스를 한 적이 없습니다. 엄마 무릎에 앉거나 쓰다듬어본 적이 없어요. 아무한테도 말할 엄두를 못 냈어요 그랬다간 채찍질당하니까요 나는 내가 무엇 때문에 채찍질을 당했는지 모르겠어요. 엄마는 나를 채찍질할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어요. 난 돌아가기 싫어요. 엄마가 날 때리기 때문이에요.”(매리 앨런의 증언, 당시 10세)
아동학대 기사를 읽을 때 우리가 주의할 점이 있다. 아이 입장에서 아동권리가 침해되거나 훼손된 부분을 보다 분명히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당사자 입장에서 아동학대를 묘사하고 접근해야 한다. 피해아동의 입장에서 어떤 권리가 침해되었는지를 서술하는 것은 여러 모로 도움이 된다. 아동 입장에서 생각하기와 제삼자 시각, 주로 어른 관점에서 아동학대 피해상황을 표현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흔히 이야기하듯, 모든 것을 다 아는 작가적 시점, 전지적 시점에서 상황을 서술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또한 가해자의 입장에서 표현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심리학자 조던 피터슨은 초대박 베스트셀러 [12가지 인생의 법칙]의 저자이다. 이 책의 부제는 ‘혼돈의 해독제’이며, 혼돈스러운 세상 주제에 대한 저자의 조언과 해결을 담고 있다.
저자는 ‘아이를 제대로 키우려면 처벌을 망설이거나 피하지 말라’고 주장한다. 12개 중 5번째 법칙이다. 우선, 아이 훈육이 이 시대 여타의 혼돈 주제와 어깨를 당당히 겨룰 정도로 큰 것이라고 본 그의 안목에 동감과 찬성을 표한다. 아이들에게는 성인의 올바른 가르침이 필요하다. 그의 전제에 적극 동감한다.
피터슨은 훈육에 대해 두 가지로 간단하게 정리했다. 어른들이 아이들과 관계할 때 기억하면 좋을 유용한 팁이다.
첫째, 중요한 최소한의 규칙만 남겨라.
둘째, 그 규칙을 적용할 때 최소한의 힘만 사용하라.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있다. 아동학대사건에는 이 두 가지 규칙이 없다는 점이다!!
아동학대를 가한 부모나 보호자는 자신만의 규칙을 갖고 있다. 아이들의 연령과 발달에서 할 수 없는, 과도한 요구와 기대를 한다. 그것을 이루기 위한 많은 규칙을 만든다.
또한, 규칙을 적용할 때 성인이 가진 힘을 모두 사용한다. 신체적 폭력과 물리적 압박은 가장 흔한 수단이다. 관계 속에서 우위를 점한 성인의 정서적 통제와 폭력도 상당하다. 경제적 지위 등 모든 힘을 사용해서 성인의 요구에 따르도록 한다.
이때, 아이들에 대한 가르침(훈육)은 대개의 경우, 처벌이 된다.
사랑의 매, 긍정 훈육 등 아무리 좋은 말로 표현해도 처벌이 포함된다.
처벌(處罰)은 벌을 가한다, 위법행위에 대해서 고통을 준다는 뜻이다. 주로 권위자나 어른이 정한 규칙을 위반했을 때 벌을 내린다. 체벌(體罰)은 몸에 고통을 주어 벌하다는 뜻이다. 처벌이든, 체벌이든 고통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아이들의 고통에 둔감한 어른들은 훈육을 멈춰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처벌로서의 훈육을 가할 때, 아이들에게는 배움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가르침의 효과가 없다는 말이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아이들은 처벌, 벌을 가하는 행위를 접했을 때, 자신들의 행동이 왜 잘못되었는지 알기 어렵다고 한다. 어른들에게 왜 용납되지 않고, 나아가 벌을 주는지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어른이 훈육을 통한 가르침을 전해주려고 하지만 아이들은 제대로 얻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훈육(처벌)할 때 어른들이 기대한 것과 아이들이 배우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처벌받을 때 아이들이 배우는 것으로는 모면하기, 폭력, 순응이 있다. 어른들이 원하던 결과가 아닌 엉뚱한 것을 아이들이 배우는 셈이다.
어른의 힘을 써서 아이들을 굴복시키는 것은 쉬운 길이다. 그러나, 최소한으로 규칙을 줄이고, 힘을 줄이는 것은 익숙하지도 않고, 어렵다. 아이에 대한 주의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고 규칙을 줄이고 힘을 줄이도록 해야 한다. 아동학대는 멀리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