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봄이 좋다고 하는데 나는 봄이 싫다. 아주 오래전부터 습관 같은 루틴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은 가을과 겨울이다. 그래서 여름은 극으로 싫어한다. 내향인으로 사는 사람으로서 밤이 짧은 건 정말 최악이다. 낮으로 사는 삶은 고역이다. 그래서 그럴까? 꽃은 예쁘지만 나도 남들처럼 사진 한 장을 남기지만 그렇게 핀 꽃들은 화무십일홍 얼마되지 않아 봄바람에 다 흩날리고 한겨울을 버틴 것 치고는 너무 짧아서 슬프기까지 한다. 나도 모르게 가로수에 서 있는 나무를 가만히 만지며 속으로 '너도 힘들었겠지?'라고 하며 슬쩍 만지면 나무는 아무 말을 하지 않지만 이렇게 꽃을 피우기 위해서 그 거친 겨울을 어떻게 버티었을까? 싶어서 무심하게 보낸 겨울에 눈을 두지 않았던 게 미안하다.
내가 사는 길은 벚꽃길이 예뻐서 사진을 많이 찍는다. 당장 오늘 출근길에도 많은 사람들은 사진을 남기며 웃음을 보내며 포토존에 줄을 섰다. 나도 그런 사람들을 구경하며 버스를 탔고 언제 이렇게 꽃이 피었을까 싶어서 이렇게 화려하게 피고 나면 바람이 불면 사라질 것, 에 대해서 너무 슬프다.
그리고 겨울은 동면이다. 나에게는 그렇다. 하지만 봄이 되면 나도 뭔가를 시작해야 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무거운 입장이 된다. 하지만 달리 시작할 것도 없고 그렇다고 버릴 것도 없는 이 봄의 시작은 나에게 그리 좋은 기억이 없다.
초등학교 때는 반을 찾아가야 하는 숙제였고 중학교 처음 봄은 3월에 시험을 쳐서 내가 얼마나 공부를 못하는지를 알려주는 성적표를 받아서 충격을 받았고 덕분에 열심히 공부를 해서 졸업을 했지만 그때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에 처음 입학하고서는 중학교와는 사뭇 달라서 뭔가 고등학교를 입학하고 나서는 일이 잘 풀려서 내 인생이 탄탄대로일 것 같았으나 역시 첫 번째 모의고사 점수를 받고서 충격에 학교 스탠드에서 나는 왜 살까?를 질문하면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 첫 번째 모의고사 성적으로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했는데 선생님께서는 이 성적으로 여기서 딱 30점 올라가면 수능점수이니 공부해라,라는 말씀을 남기셨다. 무서웠다. 이러다 아무것도 못 할 까봐. 공포의 영. 수를 공부하면 뭐 하나 다른 공부도 해야 하고 고등학교는 정말 공부와 기나긴 싸움을 해야 했다.
그리고 대학 봄날이다. 대학 봄날은 그나마 나았다. 처음에는 그저 그랬다. 그러다 동아리 모집에서 나는 국문과에 맞는 동아리에 들어가서 기대가 컸다. 첫 번째 동아리 모임에 갔는데 글은커녕 술만 마시고 문학에 문자도 못 들어서 한 번은 그럴 수 있지, 처음이니까 그런데 두 번 세 번 겹치면서 그냥 탈퇴하면서 혼자 지냈다. 그렇게 지루한 봄을 보내고 여름이 올 때 즈음 난 악착같이 휴대폰을 중간에 잠깐 해지하고 방학을 했다.
그리고 30대 봄은 나에게 뭔가를 하지 않으면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대기업을 퇴사하고 뭐 하지 하고 갈등도 있었고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나 스스로 숙제를 내고 생각을 하고 생각을 해서 지금 이곳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그전에는 어딘가에 소속감 없이 보내는 봄은 정말 힘들었다.
꽃은 이쁘지만 그 흩날리는 꽃이 나 같아서 눈물이 났다. 열심히 산 죄 밖에 없는데 왜 이리 힘들까 하면서 한숨을 쉬면서 공부를 했고 어렵게 2차까지 면접을 준비하면서 나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합격이라는 단어를 받고서 그제야 봄이라는 단어를 얼굴을 들고 보니 지나고 있었다.
마흔에 봄은 여러 가지였다. 누군가 그랬다. 나이가 들면 꽃이 달리 보인다고. 더 예뻐 보이고 더 아련해 보인다고.
우리 할머니는 오늘 본 꽃을 내일 못 볼 수 있다고 하셨다. 인생이 그렇게 어찌 흐를지 모른다고 하셨다.
어릴 때는 그렇구나 하면서 흘려 들었던 이 내용을 요즘은 체감을 한다.
꽃이 예쁘구나 하지만 오늘 꽃은 어제와 다르고 이렇게 생은 매일매일 다르지만 내 자리는 같고 나는 발전을 해야 한다는 압박은 있지만 며칠 전 꼭 발전을 해야 사람인가?라는 자문자답에 좀 자유롭게 살아야지 라는 스스로 답을 구하고 나서는 다소 편하다.
마지막 가장 봄에 대한 가장 큰 기억은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그 당시 남자친구는 내게 정확하게 3월에 헤어지자고 통보를 하고 잠수를 탔다. 나는 이유룰 알고 싶어서 갔으나 만나주지도 않았고 잠을 자고 꿈을 꾸면 남자친구에게 왜 그랬냐고 따지는 꿈을 그렇게 꾸었다. 그래서 꿈을 꾸고 나면 흥건하게 젖은 내 옷을 갈아입으면서 지독한 이별을 겪고서 나는 일 년을 힘들게 살았다. 그해 봄은 정말 끔찍했고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보내는 봄은 좋았을지 모르나 내가 아는 그때의 봄은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부터 내가 사랑했던 건 뭐였을까? 에 대해서 질문을 하면서 자문자답을 그렇게 하고도 답을 내지 못하고 미친 듯이 살았다. 봄날에 미친 사람으로 살아가니 주변인들도 힘들다고 떠나가고 그러다 어쩌다 친구가 정신 차리라고 이야기를 하면 귀를 닫고 살았던 그해 봄날은 내게는 지옥이었다.
난 그때 생각했다. 벌을 받는 거라고, 그래서 펑펑 울어야 하는데 너무 많이 울어서였을까? 그냥 눈물도 나오지 않는 내 눈도 싫어서 그냥 내가 이 세상에서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일들이 지금도 스쳐 지나간다.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나오는 가사처럼 모든 것이 사라지는 느낌을 잊을 수 없어서 미친 듯이 글을 쓰고 나면 나는 그래도 받은 선물들을 정리하면서 버릴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나중에는 버리고 나서야 그해 봄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내게 유난하다고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내게는 15년 친구로 나머지 3년을 남자친구로 살았던 사람과 헤어진다는 게 어디 쉽겠는가, 이렇게 헤어질 거면서 왜 내게 이성적으로 만나자고 했는지 원망이 있었다. 하지만 나도 선택한 결과였기에 원망은 나에 대한 화살이었다. 그래서 나는 알았다. 상대를 향한 화살이 아니라 나를 향한 화살이었다는 걸. 그래서 이제는 봄이 되면 그때의 사건은 희미하다. 너무 힘들어서 내가 지운 기억들이다.
봄, 누군가에게는 이런 혹독한 기억이 있다.
나에게는 봄에 대한 여러 가지 경험이 있다. 누군가는 봄을 가장 좋아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봄이 어렵다.
그래서 그럴까, 봄이 온다라고 하면 그 좋았던 겨울이 가는구나 라는 생각에 더 말을 줄이게 된다.
누구나 다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봄을 지금 보고 있다.
그래 흩날리는 이 나무들을 좀 더 가까이 보면서 살아있음을 느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