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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Apr 06. 2022

새우깡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하루를 미친 듯이 보내고 집에 들어가는 길,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요즘 기침감기로 너무 심한 하루로 남들에게 민폐를 주고 있어서 그런지 입맛이 이렇게 없기는 처음이다. 이렇게 감기가 들면 엄마가 해주는 잣죽 한 그릇이면 끝인데, 그럴 수 없으니 어제는 편의점을 서성거리다가 그냥 무심결에 새우깡을 집어 들었다. 새우깡도 못 본 사이에 시리즈가 너무 많이 나왔다.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다른 게 아니라, 어렸을 적 동생과 늘 논쟁이 있었다. 새우깡에 정말 새우가 얼마나 들어갔을까를 가지고 논쟁이 붙었었다. 동생은 새우깡은 말만 새우깡이지 이건 배신이라고 말을 했고 난 회사에서 이름을 지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지은 거라고 이야기를 했었다. 다 철 지난 이야기지만 그 어린 시절에는 그것도 재미였다. 그리고 난 엄마에게 물었었다.

"엄마 새우깡이 말이야, 새우가 몇 마리 들어갔을까?"

엄마는 웃으시며 "왜? 그게 궁금해?"

난 "응"

엄마는 "보자.." 하시며 과자 봉지 뒤를 보시며 함유량을 말씀하시며 "엄마가 보기엔 우리 딸들이 먹었을 때 딱 기분 좋을 정도까지" 아주 현명한 답을 해주셨다.

그렇게 논란의 종지부가 끝나면 우리는 알콩달콩 새우깡을 뜯어 놓고 동화책을 보면 금방 먹었다.

금세 없어진 과자에 시큰둥해 돌아다니면 엄마는 "다음에 또 사 먹어" 하시며 저녁을 차려 주셨다.



갑자기 그때가 생각이 났다. 하지만 지금은 엄마가 옆에 계시지 않으니 난 새우깡에 소주 한 병을 들고 들어왔다. 깔끔한 방, 난 간단한 상을 펴고 새우깡에 소주를 놓고 하루를 정리하며 스트레스를 풀 요량으로 lp를 틀고 생각을 정리했다. 소주의 쓴맛 때문이었을까? 새우깡이 새우깡 맛이 없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집어 먹었는데 아니다, 이건 내 입맛이 변한 건지 정말 맛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엄마는 저녁은 꼭 챙겨 먹으라고 이야기를 하셨다. 난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짓궂은 생각이 났다. "엄마 새우깡에 새우가 몇 마리 들어갔을까?" 엄마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하시며 걱정을 하셨다. 그리곤 엄마는 귀신같이 물으셨다. "무슨 일 있어?" 난 "아니" 갑자기 목이 매였다.

"아니 옛날에 내가 물었었잖아" 엄마는 "그게 언제인데.. 일찍 자.." 난 "응" 그렇게 전화를 끄고 새우깡을 보는데 새우깡이 단순히 과자로 보이지는 않았다. 짤막한 모양에 굽은 등에 쪼그린 모양이 꼭 내 모습 같았다. 자세히 보니 내가 살아가는 모습 같아서 괜히 슬펐다. 누구나 먹으나 또 질려서 먹지 않을 수 있는 이 새우깡이 위로가 되는 과자가 될 수 있다니,  내가 새우깡을 살 만큼 딱 이 만큼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새우깡이 나를 속였다. 쉽게 살 수 있어서 편한 과자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내 모습과 너무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버리고 싶었다. 결국 난 새우깡을 다 먹지 못하고 노란 고무줄에 돌돌 말아서 냉장고에 넣고 소주만 쪼르르 따라서 마시고는 물을 안주로 하루를 보냈다.

새우깡이 나를 속일지라도 화를 내거나 울지 말아야지. 하지만 어쩌다 이렇게 자세히 보면 안보였던 부분들이 보이는 이 새우깡이 기특해서 난 오늘 아침 하나를 먹으며 '그래 네가 네 등을 펴주마' 하며 중간을 잘랐다.

'뚝'하고 부러지는데 내 허리가 뚝 하고 부러지는 것 같아서 새우깡은 그냥 새우로 남기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엄마가 예전에 그러셨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라, 그래야 사는 게 편하다. "

난 이 말이 싫었다. 내가 괜히 지고 들어가는 것 같아서 , 그래서 늘 "왜?"라고 물었지만 엄마는 삶의 이치는 그냥 있는 게 아니라고 하셨다.



그래, 새우깡이 가끔 나를 닮아 보여도 화를 내지 말아야지. 그냥 친구처럼 웃어야지. 각박한 서울살이에 친구 추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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