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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Apr 06. 2022

개나리 분식집에서 난 꿈을 먹었지.

고등학교 교문 앞 분식집 이름이 개나리 분식집이었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토요일도 학교를 다녔기에 토요일은 정말 줄이 길었다. 삼삼오오 모여서 먹는 분식이 뭐 딱히 다른 건 없는데 그렇게 많이 먹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이승환옹의 노래를 들으며 우리는 돈 벌면 콘서트를 가자고 약속을 하고 대학을 가면 남자 친구와 같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마구 남발하면서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그렇게 먹었던 분식집을 아주 정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하나 있다. 그날은 스릴이 넘치게 먹었다.

뭐든 평범하면 기억에는 그저 그런 기억일 텐데 이날은 스릴 만점이었다.


난 기숙사에서 먹고 자는 식이라 아무리 늦어도 저녁 7시까지 기숙사를 들어가야 했다. 그리고 절대로 학교 담벼락을 넘을 수 없었다. 개나리 분식을 가려면 담임 선생님의 외출증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날은 모의고사를 치른 날이었다. 



고2 때였는데 모의고사를 끝내면 보통 선생님들은 당번제로 야간 자율학습제도에 감독을 하시는데 2주 후가 학교에 가장 큰 행사인 체육대회가 있었다. 우리 학교의 상징인 체육대회에는 1부가 학생들의 운동과 기타 페스티벌이고 2부는 선생님들의 노래실력을 볼 수 있다. 엄격한 (?) 심사위원단이 있어서 1부 2부 각 점수를 매겨서 3등 안에 들면 각 반에 30만 원이 주어져서 선생님들도 은근히 즐기셨다. 



그렇다. 그래서 그날은 선생님들이 단체로 노래방을 가신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래서 난 친구들과 눈빛을 나눴다. 학교 담을 넘어 분식집을 가기로 한 것이다. 



친구는 "야 이러다 걸리면 끝이야" 난 "어차피 담임도 없어"

그렇게 호기롭게 치마 교복을 벗고 체육복으로 환복을 하고 담을 넘었다.

그리고 "가방 던져"

친구와 난 가방을 서로 던져 가며 개나리 분식집으로 갔다.

이런 사람이 별로 없었다.


우리는 떡볶이 2인분에 순대 1인분을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열심히 먹었다. 그리고 배를 채우고 다시 담장을 넘었다. 이런 담임 선생님의 차가 운동장에 도착해 있다. 난 친구에게 "야 큰일이다, 담임이다" 친구는 "야 우리 죽었다" 황급히 우리는 옷을 교복으로 환복하고 아닌척하고 기숙사로 들어가려는데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담임이다. 무서운 인간, "어디 갔다 오냐?" 난 최대한 아닌 척하고 "아뇨, 문제집 살려고 했는데 있어서요, 교실 갔다가 왔어요" 담임 선생님은 뛰어 오시더니 "그런데 왜 체육복이야?"

난 "불편해서요" 문제가 있었다. 떡볶이 국물이 묻어 있었다. 눈치가 대박인데 이를 어쩌지 하고 걱정할 때 옆 반 친구가 "야 빨리 와 우리 ebs야" 하고 불렀다. 그렇다. 저녁이 끝나면 기숙사에서는 강제로 ebs시청을 하게 되어있었다. 



난 눈치를 보며 "어 가야지"하며 서둘렀다. 담임 선생님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으시고 "너 진짜.." 하시는데 "저 가볼게요" 하고 날렵하게 뛰었다.



2층까지 뛰어가서 "야 담임 선생님 속은 것 같지?" 친구는 너무 숨이 차서 "몰라 몰라 망했어"

우리는 웃으며 방에 들어갔고 친구들은 어디를 갔다 왔냐고 물었다.

우리는 개나리 분식집에 갔다 왔다고 이야기를 했고 담을 넘었다고 했다.

그 말은 결국 퍼졌고 아이들은 부러워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범죄를 저지른 사건이었다. 그날 이후로는 담을 넘지 않았다.

스릴 넘치게 먹은 그날의 분식은 사실 분식이 아니라 나의 꿈을 먹은 거다.

고등학교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날리며 희망이라는 단어 속에 커서 우리는 대학에 가서 운동권으로 살자며

문학의 기능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고 나름 어른이라는 티를 내고 싶어서 진지하게 분식을 먹었다.


개나리 분식집은 이제 없다. 

몇 달 전 학교를 갈 일이 있어서 갔더니 분식집 자체가 없어졌다.

너무 섭섭했다. 

나의 꿈을 먹었던 개나리 분식집, 고등학교 시절 꿈을 먹었던 개나리 분식집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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