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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May 08. 2022

엄마는 현금이 싫다고 하셨어.

어버이날 , 엄마의 진짜 속마음, 자식은 한참 멀었다.

어버이날 우리 집은 대환장 파티였다. 보통 우리 집은 비공식 명절이 있다. 엄마 생신, 아빠 생신, 결혼기념일, 어버이날 이 4대 기념일은 우리 가족은 총출동이다.



늘 그랬다. 내가 초등학교 때 어버이날 풍경은 여동생과 함께 고사리손으로 모은 꿀꿀이를 털어서 흔하디 흔한 엄마 양말과 아빠 손수건 그리고 편지, 가장 중요한 건 케이크인데 돈이 없어서 보름달 빵이라는 빵을 두 개 사고 집에는 곤로가 있어서 성냥을 꽂고 노래를 불렀다.



노래는 그때그때 달랐는데 두 분이 다 좋아하는 노래는 우리가 연습하는 동요였다. 아빠는 내게 은근히 "딸 올해 어버이날에는 무슨 동요야?"라고 물어보셨고 난 고민을 해서 여동생과 돌림노래로 부르기도 했다. 그럼 엄마와 아빠는 좋아하시며 활짝 웃으셨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여동생과 난 돌아가면서 악기도 사용했다. 가난한 집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악기는 아코디언이었는데 그건 정말 어려워서 몇 달을 연습했다.




매년 돌아오는 어버이날에는 여동생과 난 한 달 전부터 계획을 했고 그걸  아신 부모님은 모른 척하셨지만 내심 기대를 하셨다. 늘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카네이션을 드리기는 지루해서 여동생과 함께 색종이를 사서 이리저리 접어서 편지를 써서 드렸다. 저녁이 되어 보름달 빵에 편지에 우리의 막간 공연이 있으면 두 분은 없는 돈에 빵은 왜 샀냐고 하셨지만 감동에 고이는 눈물은 어쩔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추억이다.



올해 어버이날  난 동생과 상의 끝에 작으나마 돈을 준비하고 식사를 하기로 했다. 본가를 팔고 더 깡촌으로 들어가신 부모님의 제2의 인생을 축하하기 위해서 현금을 준비했다.



부모님을 뵈려고 준비한 현금과 고기 기타 음식을 사고 갔다. 부모님은 뭐하러 왔냐고 하셨지만 내심 눈에는 조카가 제일 먼저 보이신 듯했다. 할머니하고 뛰어가는 조카에게 다 퍼줄 것  같은 엄마는 밥 먹자 하시며 벌써 밥상을 준비하셨다.


난 " 엄마 우리가 먹을 것 다 준비했는데"

엄마는 "뭐하러"

난"아니 어버이날인데"

엄마는 "그래도 나 만큼은 아니지"



그렇게 조용하게 점심을 먹고 상을 물리고 다과를 먹는 시간, 여동생이 조용하게 현금봉투를 내밀었다.

"두 분 우리 키우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얼마 안 되지만 이걸로 사고 싶은 거 사세요"

난 좋아하실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엄마의 노기 어린 음성이 시작되었다.

"돈이면 다냐?"


난 "아니 엄마 그게 아니라 이번에 본가도 팔리고 더 시골이라.."

엄마는 "다들 나이 들면 현금 좋아한다고 하는데 너희들은 엄마 아빠 그렇게 겪고도 몰라?"

난 너무 당황스러워서 "아니 그게 아니라.."

벌써 이야기는 물 건너갔다.


아빠도 "우리는 현금이 싫다. 그냥 자주 보고 사는 게 낫지. 가거라"

생각지도 못한 냉담한 이야기에 나와 여동생은 눈빛으로 죄송하다고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정말 죄송하다고 했다.


조카는 이미 울며 "할머니 화내지 마" 하며 엄마를 다독이고 있었다.

상황은 어떻게 흘러가도 이상하지 않게 흘러갔다.


난 엄마에게"엄마 우리가 자주 올게요"

엄마는 "난 돈 싫어. 아니 돈 좋지, 그런데 이렇게 돈 주고 안 오는 건 싫어"


난 변명이라도 해야 했다."엄마 안 오는 게 아니라 어버이날이라서 뭘 할까 하다가 생각한 거야"

엄마는 "편지는? 왜 편지는 안 쓰니? 어렸을 때는 그렇게 쓰더니?"

그러고 보니 깜빡했다.


난 속으로 아차 싶었다.

여동생도 눈을 깜빡했다.


아빠는 화난 엄마를 모시고 밖을 나가셨다.

난 여동생과 이야기를 했다.


여동생은 "언니 엄마가 오해도 있으시고 우리가 너무 돈에 이야기를 해서 섭섭하셨나 봐"

난"그러게 그게 아닌데.."

몇 분이 흐른 뒤 아빠는 돌아오셨고 엄마는 화를 녹이셨다.


그리고 아빠는 "우리는 다 필요 없다. 그냥 너희들이 자주 오면 되는 거다. 그리고 이 돈은 한 번 받으마. 어차피 산골생활에 필요한 것들 사기로 했으니 잘 쓰마. 엄마가 예민하신 것도 있지만 요즘 세상에 다들 돈이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글쎄다.. 우리는 없이 살아서 너희들을 키워서 그런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요, 자주 올게요"

그렇게 감정을 서로 추스르며 엄마는 차를 내오셨다.


엄마는 "고맙다. 그리고 자주 와"



난 "엄마 죄송해, 생각이 짧았네, 우리 엄마는 편지를 더 좋아하시는데"

엄마는 "알면서.."


난 그래서 그 자리에서 짧은 메모를 하고 서울에 올 수 있었다.


사람들은 나이 들면 현금이 최고라고 다들 그랬다. 그래서 우리는 현금을 준비했는데 우리는 틀렸다. 부모님은 섭섭하셨던 거다. 우리를 어렵게 키워내시면서 자신들의 성향을 아실 줄 알았는데 돈으로 막았다는 생각을 한 그 순간이 너무 허무하셨던 것 같다. 죄송했다.


난 그래서 앞으로 한 달에 한 번은 편지와 함께 찾아 뵐 생각이다.

생각해보면 어렸을 적 없이 살면서 보름달 빵에 성냥 꽂아서 노래 부르며 보냈던 그때의 어버이날이 더 좋았던 것 같다. 아마 엄마 아빠도 그때를 생각하신 듯하다.


엄마 아빠 죄송합니다. 못난 자식이 이렇게 뒤늦게 글을 씁니다. 긴 글로 깊은 마음으로 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https://youtu.be/0HbsJiXbC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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