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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May 18. 2022

개미같이 벌고 정승같이 쓰는 달이 5월이다.

5월에 행사가 너무 많다. 일단 지난 어린이날에는 조카들 선물에 포켓몬 빵과 레고 선물에 꽤 지출이 있었다. 어린이날이 되기도 전에 조카들은 내게 받고 싶은 선물을 찍어 보냈다. 난 웃으며 알겠다고 했는데 그 구하기  힘든 포켓몬 빵 때문에 우리 동네 편의점 아저씨께 특별히 부탁을 해서 수배령을 내렸다. 그리고 레고는 아이들이 점점 커가면서 돈이 올라가서 이것도 제법 비쌌다. 역시 지갑은 순식간에 얇아졌다.



그리고 어버이날에는 앞선 브런치에도 적었지만 현금은 싫다고 하셨지만 동생과 도톰한 돈을 드렸고



지난 스승의 날에는 담임 선생님에게는 편지와 꽃 그리고 작은 선물을 그리고 사회에서 만난 스승님에게는 음식과 역시 작은 선물을 참 일이 많았다.



 다행스럽다고 해야 하나 생일이 없다. 그런데 내가 사는 집에 문제가 생겼다.



꼭 돈이 많이 들어가서 아껴야 할 때 한 번씩 터진다. 에어컨이다. 올해 처음 작동을 했는데 소리는 나는데 시원하지는 않았다. 이리저리 틀어보고 작동을 했는데 소리만 나고 영 개운치 않아서 돈을 아껴볼 요량으로 녹색창을 검색했으나 이건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했다.



결국 as를 요청했다. 금액은 상상 이상이었다. 하지만 더운 것도 추운 것도 싫어하는 나는 포기할 수 없어 또 지갑을 열었다.



이번 달 지출은 지난달 지출의 배인 것 같다. 뭐 일일이 적어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 아이스 아메리카노보다 많이 나간 건 사실이다.



해마다 5월은 금액이 올라간다. 물가가 올라가서인지 아니면 금액이 적으면 안 된다는 내 심리인지 알 수 없지만 5월은 감사의 달이지만 내 지갑은 얇아진다.



꿀꿀이를 내일 은행에 가져가야겠다. 꽉 찬 돼지가 푼돈이 되어 내 목을 축여줄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다음 주 가족모임이다. 아 끝나지 않았다. 인생은 그래서 go다.



매년 초에는 올해는 얼마를 모아야지라는 목표 금액이 있다. 달성한 해가 있고 못 한 해가 있다. 난 혼자다.



 남편이 있어 돈을 벌어다 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금수저라 놀 수는 없고 개미처럼 살아야 하는데 늘 고비가 온다.



내가 유일하게 즐기는 게 음료인데 이것도 줄여야 돈을 모은다면 삶의 재미는 없지 싶다.



5월은 개미처럼 일하고 정승처럼 써야 하는 달이다. 그런데 난 지금 휴직이다. 그래도 할 건 다 해야 하는 대한민국의 장녀, 그래 개미처럼 씩씩하게 휴직도 즐겨보자, 괜한 약간의 후회는 있다.



하지만 건강은 돈보다 소중하니 위로를 보낸다.



우리 엄마 아빠는 가난한 시절 어떻게 우리에게 선물을 하시고 어버이날을 챙기셨을까?



결혼이라 함은 한쪽만 할 수 없을 텐데 형편이 어렵다고 시댁만 챙길 리 없는 아빠 성격은 아마도 반찬값 아껴가며 도시락으로 대신한 천 원을 모아가며 드렸겠지라는 생각이 든다.



역지사지라는 고사성어는 나이가 들면서 많이 생각하게 된다.



내가 부모였다면. 글쎄 잘은 모르겠지만 빚보증으로 좋은 음식은 양가에 못 해 드렸어도 아마 엄마 아빠는 직접 해드렸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좋아하셨겠지.



바쁜 사회생활에 그렇게라도 자식을 보는 날이 있으니 얼마나 기다리셨겠는가, 잠깐 흐릿한 기억을 돌리면 엄마는 외갓집에 갈 때 장롱에서 가장 예쁜 옷을 입으셨다.



난 그게 이상해서 평소에 꾸미지도 않는 분이 왜 그러실까 하고 여쭤보면 엄마 대답은 "응 외할머니 걱정하시니까"로 대답을 대신하셨다.


실제로 엄마는 꼭 외가를 가면 차려 입고 가셨다. 평생 립스틱도 잘 안 하시는 분인데 외가를 가면 힘을 주시면서 어떤 옷을 입어야지 하시며 고르셨다. 난 그게 이상해서 "엄마 그냥 편하게 입고 가"라고 했고 엄마는 "외할머니 걱정하셔" 라며 나에게 옷을 고르라고 했지만 옷이 거기서 거기인데 뭘 고르라는 건지 난 그냥 고민하는 척하고 골랐다. 그럼  엄마는 그 옷을 입고 외할머니를 만나시면 "엄마 저희 왔어요" 하시며 웃으셨다.



외할머니는 "잘 지내지?" 하시며 엄마의 용모를 보셨고 엄마는 "저희 잘 살아요"를 말씀하셨는데 빚 갚느라 허리 휘는데 잘 살기는 하면서 난 속으로 엄마의 거짓말에 어이가 없었다. 외할머니는 엄마보다 아빠를 챙기시며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 오셨고 난 간만의 만찬으로 배불리 먹고 잤다.



그리고 할머니 댁을 가면 엄마는 있는 정성 없는 정성으로 밥을 차리셨다. 그럼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고 칭찬을 그렇게 하셨다. 아직도 기억나는 일화는 국에 대한 칭찬이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정말 입이 까탈스러우신 분이시다.                                                                                                                            



그리고 한 반찬이 두 번 상에 올라가면 안 되는 분이라 할머니도 힘들어서 처음에는 시집살이가 아니라 남편살이로 힘드셨다고 한다. 그런데 엄마가 결혼하고 처음 할아버지 생신을 한다고 맡은 파트가 국이었는데 할아버지께서는 꼭 밥에 국을 드시는 습관이 있으시다.                                                                            



국을 첫 입에 드시고는 껄껄 웃으셨다고 한다. 그리고 이어진 말씀에는 "내가 며느리 하나는 잘 뒀다. 한 번에 내 입맛을 잡았어" 하시며 그 자리에서 국을 두 번 드셨는데 할머니는 괜히 심통인지는 몰라도 한 숟갈 드셔 보시더니 "그렇네요" 하시며 깐깐한 할머니 마음까지 잡으셔서 엄마는 어버이날이 되면 국을 하는 며느리가 되었다.



어버이날이 되면 우리 집은 할아버지 댁을 가면 온 가족이 모여서 밥을 먹었다. 간혹 참석을 못하는 집은 무엇으로 대체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집은 엄마가 밥을 하고 아빠가 할아버지와 바둑을 두는 흔한 풍경이었다.

 

난 엄마를 도와 약간의 설거지를 하는 정도였다.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면 어버이날은 영락없는 노동의 날이었다. 내심 난 집에 일찍 가고 싶어서 표현을 하면 엄마는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 입 당부를 하셨다. 난 그때 알았다. 딸과 며느리는 정말 하늘과 땅 차이라는 걸.



엄마 아빠는 정말 개미처럼 성실하게 사셨다. 5월에 정승같이 쓰셨는지는 몰라도 자식들에게는 성실함 하나는 물려주신 건 확실하다.

그래서 지금 난 그 성실함을 위해 잠시 휴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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