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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Jul 01. 2022

나는 왜 글을 쓰지 못할까, 브런치가 답이 없구나.

난 최근 글을 쓰는데 매우 힘들다. 간단하다. 글을 못 쓴다. 알고 있다. 팩트체크이다. 스스로 체크하니 "너 못써" "어 알아" 내 속에서 주고받는 말들이 오고 가는데 머릿속에서는 "그만하지"라고 한다.


어제는 한참을 생각했다."왜 나는 글을 쓰지 못할까?" 아니 "왜 나는 글을 감동 내지는 적어도 뭔가 끌어내지 못할까?, 네가 읽은 책은 그냥 전시용이었니?"라고 자책에 자책을 하며 다른 작가들의 글을 봤다.

참 잘 쓴다. 그리고 이내 나온 내 입에서 "아 부럽다"


그렇다. 난 고등학교 시절 철부지 야금야금 상을 으며 나름 문학에 꿈을 두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모대학 창작과 시험에 갔었는데 거기는 이미 날고뛰는 학생들 속에서 어떤 어른이 나와 칠판에 소재를 던져 주고 갔는데 다들 쉼 없이 쓰는데 난 멍해서 어쩌지, 라는 표정으로 겨우 써서 냈다.

웃긴 건 그게 상을 받고 나서 나의 담임은 내게 그 이후 토요일이 겹치는 교내 대회에 나를 보내셨다.


그리고 난 생각했다. 뭐든 자주 하면 글도 늘겠지? 개뿔 글은 늘지 않고 기차 타는 법은 늘었고 어떻게 하면 잘 잘 수 있는가 이상한 잡기만 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내가 23살이 되던 해 나와 서로 주고받기를 하던 친구는 본격적으로 신인상을 받으며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하지만 청탁이 없어서 한없이 고민하다가 서른에 빵 하고 터져서 본격적인 소설가로 지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나와 결이 다르다.


며칠 전 나와 대판 싸웠다.

나의 브런치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데 그녀의 말에 의하면 브런치에 글을 쓰는 내 수필에 말장난이라고 정확하게 말장난이라는 세 단어로 혹평을 했다. 그래 난 혹평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글을 쓸 때 몇 번의 퇴고를 하고 퇴고를 한다. 그래서 적어도 장난처럼 글을 쓰지 않는다. 그런데 나보고 말장난이라고 해서 화가 났다. 그래서 난 그동안 묶혔던 이야기를 꺼냈다.

"그럼 넌 작가라는 게 문체를 가르쳐 준다고 돈 받고 다니냐?"라고 되물었다.


알고 있다. 다들 알겠지만 문체는 가르쳐 줄 수 없는 거다.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듯이 글에 있는 지문인데  작가의 고유성에 대해서 가르쳐 준다는 게 그게 말이 안 되는 건데 모집해서 돈 받아서 문체를 가르쳐 준다는 것에 난 평소 불만이 많았다. 결국 난 말을 했다.

이어진 소설가 친구는 "그게 어때서?"

난 "너도 알잖아 그거 아니라는 거"

친구는 "문체를 모르는 사람에게 구조를 알려줄 수 있지"

난 나도 모르게 "사기 치지 마"라고 했다.


흥분과 분위기가 묘하게 돌아가자 갑자기 나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소설가 친구는 "너 괜히 내가 소설가 되고 넌 안돼서 배 아파서 그런 거지?"

난 생각을 했다. 한 시절 그런 적도 있었다. 같이 상 받으면서 우리 둘이 상을 돌려받으면 친구들은 "다음은 몽 접이네" 하던 시절이 있었다. 난 그럼 "아니야"라고 했다.

그래서 나도 친구가 소설가가 되었을 때 '나는 왜 안될까' 생각했다.

나도 사람이니까, 하지만 거기까지 난 어디까지나 대학 그리고 대학원에서 비평으로 졸업하고 논문을 마쳤다.


내가 비평을 해야 한다고 한 사람은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 대학교 , 대학원 담당 교수님 모두 입 모아 "몽접 네가 가야 할 길은 비평인 것 같다, 아니면 소설 비평을 권한다"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 이후는 시를 쓴다거나 소설을 쓰지 않았다. 그리고 난 친구의 길을 응원했다.

난 친구의 작품에서 내 이야기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야기했다.

"어 한때는 널 부러워했는데 네가 쓴 작품 보니까 그리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겠더라, 네 글에서 어떤 작가가 떠올랐거든. 네가 가수였다면 아마 표절이라고 난리였을 거야"

소설가 친구는 "야!"

난 그 작품을 이야기했다.

소설가 친구는 "그 작품은..."

그리고 난 이야기했다.

"내가 왜 네 작품을 비평하지 않았는지 아니? 작품이 아니라서, 할 작품이 없어서. 난 심리학 사회학 공부를 해서 안내서처럼 비평을 해서 널리 알리고자 하는 작품만 비평문을 써, 그런데 넌 가치가 없었어. 그리고 독자로서 부탁인데 베끼지 마"


나의 지적에 소설가 친구는 내게 "너 그거 지금 자격지심이야"

난 웃으며 "자격지심? 글쎄 난 그렇게 너에게 자격지심을 느낄 만큼 탐나는 작품이 없어"


소설가 친구는 그렇게 어이없어하며 원샷으로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난 말했다. "브런치 말 많지 누군가는 그냥 습작으로 쓴다고 하고 누군가는 글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꿈놀이터라고 하고 그런데 너 그거 알아? 글 쓰는 사람들 그냥 안 써, 적어도 너처럼 베끼지는 않아. 구조와 문체를 "


나의 언어에 상처를 받은 걸까, 소설가 친구는 "알았어, 제대로 쓸게"

난 다시 말했다. "내가 클래식 좋아하잖아. 너도 알잖아. 다 그러더라고. 300번 연습을 하면 실전에서는 한 90번 나온다. 내가 생각을 해 봤거든. 난 아니더라고. 난 300번 연습을 안 했어. 그래서 오직 이 브런치가 나에게 바란 건 연습뿐이었어. 피땀 어린 연습, 그리고 자기 펙트 그것도 칼날 같은 펙트 체크. 여기가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야."


소설가 친구는 "알아"

난 "그래?"

소설가 친구는 "그래도 소설과 수필은 다르지"

난 "왜 또 소설이 수필보다 위다 이걸 말하고 싶은 거야?"

평소에도 그랬다. 우리는 그래서 문학상이 달랐다. 난 수필이나 시였고 이 친구는 소설 부문이었다.

친구는 "소설은 힘들어 하지만 수필은 날것을 다루면 되니까"

난 한숨이 나왔다.

"문학에서 우위는 없어, 그걸 정하는 사람도 없고 그걸 기준으로 하는 것도 없어. 그런 몰상식을 이야기하면서 글을 쓴다는 게 안타깝다"

친구는 내게 "소설은 문학에서 최고봉이야"

난 웃겨서 "야 웃기지 마 어떤 작품도 어떤 장르도 최고는 없어. 다만 그것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지"


이런 지난한 이야기를 두어 번 주고받고 우리는 자리를 떴다. 사실 소설가 친구를 두고 우리는 두 파로 나눠졌다. 소설가가 되어서 잘 나가는 친구가 있다는 셀럽용 친구와 나같이 지적하는 친구, 그런데 난 이제 지적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 글 쓰기도 바쁘다. 하지만 내가 이 친구에게 문체와 구조를 베끼지 말라고 했던 건 사실이다. 치명적이다.


글을 잘 쓰고 싶다. 정말 절실하다. 그러나 안되니 오늘도 고민을 붙잡고 있다. 이게 내 결론이다.

타 작가님들에게 의견을 물어봐야겠다. 고견을 물어봐야지.

"작가님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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