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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Jul 06. 2022

공무원과 이별 못한 남자, 공무원과 이별 원하는 여자.

올해 최저율이었다는 공시생의 응모율, 그 답은 월급과 워라벨에 있을 것이다.

난 대학을 졸업하고 도서관에 갔을 때 나와 같은 학교를 나온 중학교 친구들이 다들 공무원 고시를 준비해서 정말 깜짝 놀랐다. 공무원을 처음부터 꿈을 꾸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 일 수 있고 공무원 엄마 아빠를 둔 나로서는 그 길이 그리 녹록하지 않다는 걸 알기에 공무원에 희비를 알아서 나는 그냥 공무원 말고 다른걸, 하자라는 생각이 들어서 책을 들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들은 공무원 책을 붙잡고 공부에 불을 태울 때 난 그냥 소설책을 대여하면서 열심히 문학에 열정을 실었다.


그리고 언제인지 정확하지는 않은데 친구가 학원을 열어서 시청에 갈 일이 있었다. 깜짝 놀랐다.

그때 공부한 친구가 앞자리에 앉아서 일을 보고 있었다.

난 너무 놀라서 "어머 너.." 하면서 놀라는데 친구는 "왔니?" 하며 웃었다.

그렇다, 고시에 합격을 한 친구가 자랑스럽기도 하고 아는 사람이 일을 한다는 게 신기하기도 해서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데 능숙하게 일을 처리하는걸 보고서 마치 연예인을 보는 내 시선에 친구는 "뭐 처음 봐, 일 하는 사람?" 하면서 웃었다. 난 "아니 그냥 신기해서"라고 웃었다.

그리고 난 "합격이네?"

친구는 잠시 시간을 내서 내게 비타민 음료를 권하며 두 번 만에 합격이라며 윙크를 날렸다.


좋은 이야기는 여기까지, 그런데 이 흥미로워야 할 이야기는 얼마 가지 않고 지금 딱 10년이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나 불행해"라는 말로 나에게 상담을 요청하고 있다.

민원 문제 , 직원 갈등, 등등 그동안 쌓아왔던 문제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난 그동안 어떻게 참고 지냈지 하고 생각하는데 생각보다 힘든 공무원 세계를 알고 있었지만 엄마 아빠가 다니던 공무원 시절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그래서 결국 난 친구에게 아무런 조언 없이 들었다.


친구는 같은 과 담당 직원과 결혼해서 아이도 있고 육아휴직도 쓰고 복직해서 일도 하지만 지금은 민원에 거의 쓰러질 지경이다. 민원이야 늘 있어 왔지만 요즘 더 심하다며 늘 쏟아내는 악 소리는 그 극에 달했다.

그래서 난 친구에게 조심스럽게 "외벌이는 힘드니?"라고 했다.

친구는 펄쩍 뛰며 "무슨 소리야 공무원 혼자 벌어서 누 구입에 "라며 단칼에 잘랐다.

난 "연금 있잖아"

친구는"야 쥐꼬리야"

다 아는 이야기를 이렇게 이야기하니 다시 회자되는 것 같아서 자기는 죽을 때까지 붙어 있을 거란다.

그리고 매해 들어오는 신입들 보면 안쓰럽다며 공무원 신화는 이제 없다며 거품 물어가며 이야기하는데 난 그렇구나 한다.

그리고 친구는 "넌 같은 공무원인데 연구직이라 좋겠다"

난 "그런데 우리도 나름 어려움이 있지"

친구는"그래?"

난 "응 심포지엄 포럼 각종 행사 백업에 여러 가지 그리고 뭐 사내 조직 문화도 그렇고 다 똑같이 음과 양이 있는 거야"

친구는"하긴 그렇지" 


난 잠시 이야기 흐름을 돌릴까 싶어서 아이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괜히 꺼냈다.

아이 때문에 산후 우울증 이야기를 꺼냈다.

친구는 "남편이 도움을 주나, 시댁과의 갈등이 거의 극이었다"

난 "그렇구나"

친구는"너 혼자 살아, 혼자 편해"

난 "혼자 살면 혼자 사는 것에 또 불편함도 있어"

친구는"난 다시 태어나면 혼자 살 거야"

난 "그래?"

친구는"야 결혼이 아니다 아니야"

그렇게 이어진 대화는 거의 3시간의 푸념과 허탈함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말미의 대장식은 남편에 대한 푸념이었다.


난 한숨을 나도 모르게 쉬었다.

그걸 눈치챈 친구는 "나 너무 오랜만에 이야기해서"

난 "아니야"

그리고 블라블라 어렵게 끊어진 대화를 마무리하고 전화를 놓고 나니 무슨 시험을 치른듯한 경험을 한 기분이었다.


친척 중에 지금은 로스쿨이지만 사법고시로 5수를 하신 분이 있다. 사람들은 그를 장수거북이라고 불렀다. 한 번에 붙으면 '영감'이라는 호칭에 국회의원이 와서 인사를 하겠지만 저러다 못 붙으면 인생은 그냥 낙장불입이라고 했다. 결국은 5수를 채우고도 안됐다. 남의 이야기는 쉽다. 그 친척은 결국은 공무원의 꿈을 접고 편의점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편의점 사업, 말이 쉽지 남는 게 없다.

이리저리 얽힌 사업 구도가 점주가 맡아야 할 일이 너무 많고 인건비가 비싸서 거의 집안이 뛰어들어야 할 수 있는 수익구조란다. 

그래서 결국은 부인과 같이 일을 하는데 자주 보는 부인과 다툼에 자식들도 일찍이 철이 들어서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고 있다.

참 인생은 알 수 없다.

그 자식들 중 한 명이 지난해 공무원 시험을 보겠다고 시험을 봤는데 떨어졌다.


친척은 잘 됐다고 요즘 공무원 해 봐야 별 것 없다고 위로를 했지만 막상 떨어진 사람은 펑펑 울었다.

그리고 한방에 떨어진 건 경험이라며 또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중요한 건 노량진에서 같이 컵밥을 먹으며 공부를 준비하던 사람들이 많이 줄었단다.

그래서 재도전에 의지를 불태우고 있단다.

남들은 공무원이 이제는 끝물이다 아니 다를 이야기 하지만 부모가 못다 이룬 꿈을 이루고 싶다며 재기를 꿈꾸고 있다.


난 당연히 합격을 기원한다.

참 아이러니다. 공직에 있는 사람은 다음 생애는 공무원 안 할 거라 하고 지금 준비하는 친척은 무조건 해야 한다고 하니 무엇이 맞을까?

그 많은 공시생은 어디로 갔을까?

컵밥 나도 많이 먹었지만 먹을 때마다 느낀다. 참 양념이 다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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