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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Oct 10. 2022

팀장도 신입이 그리울 때가 있다.

벌써 연차로 팀원의 팀장인 난 하반기 연수와 행사로 바쁘게 보내고 있다.

여기 입사가 기본학력이 석사 졸업자여서 다들 박사 학력이 많아서 나도 이번에는 박사 코스를 가기로 해야 돼서 일이 두배로 늘었다. 대신 지원하는 일이나 업무도 많이 줄었다. 해야지 해야지 했는데 난 너무 늦게 지원했고 일이 손에 능숙해지면 해야지 하다가 여기까지 밀렸다.


연구원장님께서 호출을 하셨다. 지난주 "그래 몽접 연구원 이제 슬슬 해야지, 다들 박사로 구성원이야"

안경을 올리시며 차를 권하셨다.

"네 알고 있습니다"

연구원장님은 "대신 일은 줄이고 연구실적과 기타 백업도 좀 줄이고 내가 지시를 하지"

난 "감사합니다"

연구원장님은 "그럼 안식년은 어때?"

난 "아닙니다. 그냥 일하면서 조금씩 천천히 하겠습니다. 어차피 몇 년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연구원장님은 무슨 생각을 하시고 계시는 건지 "그래.. 천천히 생각을 하지.. 그리고 너무 부담을 갖지 말고 내용을 실하게 그래요"

난 인사를 하고 나왔다.


동기들은 거의 박사를 마쳤다. 점심을 먹으며 난 "나 이번에 일 좀.." 했더니 다들 "야 말이라고" 하면서 다들 나눠서 도와주기로 했다.

당장 다음 주 제주도 콘퍼런스가 있다. 내가 메인이다.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주말에도 쉬지 못했지. 내 후임은 딱 2명이다. 우리 하는 일이 많이 뽑아야 일 년에 2명 정도다. 그것도 매년 채용이 아니다. 그래서 쉽지 않다.


후임들은 나만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하나하나 이야기를 해주고 지도해야 한다. 나도 처음에는 답답했는데 내 초년 시절을 생각해보면 호랑이 사수는 어떻게 하셨을까 싶어서 감사드린다. 호랑이 사수의 원칙은 욕을 먹더라도 한 번에 확실하게, 라는 모토로 혹독하게 가르쳐 주셨다. 그래서 난 실수를 많이 줄일 수 있었다.


호랑이 사수와 6개월이 조금 지났을 때 음료수를 사주시며 "너도 언젠가는 후임이 들어오겠지만 이날이 아마 가장 좋았다"라고 기억이 될 것이다 하셨다. 요즘이 딱 그렇다.

백업은 잘 안되고 실수의 연발이라서 차라리 내가 다 알아서 하는 게 빠른데 그러려니 후임이 배울 것이 없으니 실수라도 내가 가르쳐야 하는 입장이다.


지난번 연구원장님이 각자에게 할당을 한다고 하셨는데 왜 후임을 내게 전달하셨는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호랑이 사수에게 배웠으니 호랑이에게 맡긴 다시며 웃으시며 지나가셨다.

어깨가 무거워지는 게 괜히 목에 힘이 들어갔다.


실수를 해서 배우는 그 간격의 시간이 지금은 힘들어도 그래도 용서가 되는 기간이다. 하지만 나는 주체를 해야 하고 모든 걸 감독해야 하는 팀장의 자리에서 보니 그때 그 시절이 그립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고 연차가 늘면 팀장으로 올라가 돈도 많이 받고 좋지 않냐고 하는데 세상에 공짜 없다.


같은 동기들도 요즘 하는 말이 "그때가 좋았다. 좋은 날 다 갔다"라고 실소를 한다.

하반기는 코로나가 예전 같이 앉아서 그냥 하기로 한 심포지엄부터 콘퍼런스까지 다 한다. 연례행사에 외국에서 진행되는 행사까지 합치면 10건이 넘어서 아마 해외출장도 다녀와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지금 진행하는 일이 너무 많아서 동료들에게 부탁을 해 놓은 상태이다. 


처음 이곳을 준비했을 때는 대기업을 그만두고 다소 늘어지고 무기력한 상태였다. 그러나 마냥 놀 수 없는 상황에서 어디론가 준비가 필요했다. 그때 담임 선생님께서 연구원은 어떻겠냐고 조언을 해주셨다. 난 내 깜냥에는 어려울 것 같다고 했는데 담임 선생님께서는 "넌 공부를 즐겨하니 괜찮다" 하시며 의견을 주셨다. 


결국은 그해 두 명을 채용한다는 공고를 보고서 준비를 했다. 맨땅에 헤딩을 했다. 물론 정보를 긁어 모아 준비를 했지만 워낙 모르는 상태에서 공부를 시작하는 거라 힘들었다. 같이 준비하는 사람도 없었고 나 혼자 뭔가를 하는다는 게 위험부담도 컸었고 나로서는 도박에 가까웠다. 필기시험 합격하고도 난 면접 때도 엄청 떨면서 했다.


소문에는 면접은 필기보다 더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비를 넘기고 합격의 소식을 듣고서야 난 맘을 놓을 수 있었다. 그때 패기로는 뭐든 시켜주면 다 하겠다고 했는데 처음 들어와서는 내가 생각했던 그 시스템이 아니라서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그래도 호랑이 사수는 내게 많은 용기를 줬고 다행히 잘 넘어갈 수 있었다. 


나도 지금의 후배들에게 좋은 선배가 되고 싶다.

그래서 그들의 뒷모습을 볼 때 때로는 신입의 시절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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