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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Dec 29. 2022

친구의 사직이야기를 들었다.

친구에게서 아주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고향 친구이다. 서울에서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고향친구의 연락이 반가워 주말에 밥을 먹자고 했다. 나 같은 집돌이에게는 큰 결심이다. 친구는 강남에서 살고 있어서 당연히 강남에서 볼 줄 알았는데 무슨 일인지 우리 집 근처에서 밥을 먹자고 했다. 난 알겠다고 하고 나름 평점이 괜찮은 음식점을 예약을 하고 만났다.


"하이"

친구는 웃으며 "잘 지내지?"

난 "어.. 그럭저럭"

친구는 "야 오랜만이다 얼마지?"

난 "아마도 6개월 넘지 않았을까?ㅋㅋㅋ"

친구는 스파게티를 먹으며 "나 이제 서울에 없어"

난 너무 당황스러워서 "무슨 소리야? 다른 곳에 발령이야?"

친구는 "사표 냈어"

그 순간의 당황스러움과 이건 뭐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 들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친구는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야, 그냥 지금은 백수이고 음.. 엄밀히 말하면 공무원 준비생. 야 가니까 내 나이도 많더라, 내가 왜 그 자식이 공부해서 고향 갔는지 알겠더라고, 뭐 공무원의 워라밸이 떨어졌다고 말들은 많은데 학생은 있고 내가 나이가 많아서 솔직히 좀 얼굴이 민망하겠지 했는데 나보다 나이 많은 어르신도 두어 명 봤어. 그래서 파이팅 했는데 난 그냥 동영상 강의로 공부하려고, 어차피 내가 살고 있는 집 전세라, 올해가 만기라 엄마도 그냥 고향에서 공부하라고 하셨고 숨길 필요도 없고"


이런 속사포로 내리 쏟는 친구에게서 난 뭐라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서 "아니 그 좋은 회사에서 직급도 높았는데 나왔다고?"

내 눈을 보며 친구는 "직급 높으면 좋냐? 만날 야근에 일은 좀 많아. 난 그냥 공무원으로 살련다. 그리고 서울 뭐 좋냐? 난 싫어. 그냥 고향에서 살고 싶어. 너처럼 아니 너 그랬잖아. 고향 가서 살겠다고. 같이 공부하자"

이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순간 내 포크가 멈추고 나도 모르게 멍해졌다.

난 "그럼 이제 나 혼자 남는 거네, 이 서울에.."

눈물이 났다.


친구는 "야 울 거 없어. 너도 준비해서 내려가. 연구직 힘든 거 아는데 마지막 시험이라 생각하고 힘들게 해 봐, 그리고 우리가 지금 어딜 가도 갈 곳이 없어요. 난 그냥 고향에 가고 싶어. 아주까지는 아니고 그냥 애들이 고향에서 자리 잡고 있는 거 보고 좋아 보이더라"

난 사표를 쓰고 계속 공부를 했냐고 물었더니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란다.


난 "합격하면 고향에서 지내고 그다음은?"

친구는"그다음은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는 거 아니야?, 합격해야지"

난 "응..."


나와 오랜 친구들은 살롱을 여는 게 꿈이다.

일명 초등학교 친구들의 어벤저스이다. 고향에서 우리는 많이 배웠으니 돌려주자 뭐 그런 형식인데 오래전부터 이야기했었다. 적당한 나이가 되면 고향에 돌아와서 각자의 장점을 살려서 돌려주자 그런 취지의 이야기를 했었다.

예를 들면 변호사는 서울에서 접고 고향에서 변호사를 하면서 무료 변론도 하고 의사도 그렇고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대충 이해를 할 것이다. 나는 친구들이 인문학 강좌를 열어서 독서모임을 하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를 했었다. 그래서 우리는 '살롱'이라는 이름으로 간판을 걸어서 노후를 보내자는 그런 계획을 세웠다.

그러고 보니 그 이야기를 하니 각자 직업이 있어야 하는데 이제 나만 남았다.


늘 친구들이 서울에서 고향으로 간다고 하면 내가 하는 말은 "좋겠다"라는 말이다.

친구들은 싱글벙글하면서 간다.

그리고 고향에 가면 귀신같이 알아서 연락을 해서 "커피 한 잔 하자" 하면서 "야 서울 뭐 좋냐 내려와" 한다.

그럼 난"나도 그러고 싶지" 하면서 이야기한다. 그래서 그런가, 내 마지막 서랍에 사표가 자꾸 나를 보고 있다. 


공부 아무나 하나, 난 전형적인 노력형이다. 아무리 경쟁률이 떨어지고 공무원의 현실이 떨어진다고 해도 시험은 시험이다. 그래서 자신이 없다. 사표를 쓰고 공부를 한다고 해도 붙을 자신도 없고, 그래서 난 친구에게 "너처럼 배짱이 있을 때 나도 할게" 하고 인사를 하며 헤어졌다.

친구의 합격을 기원하며 돌아서는데 왠지 모를 허전함은 내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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