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오는 이 이별은
이 나이에 오는 사랑은
다 져서 오는 사랑이다
뱃속을 꾸르럭거리다
목울대도 넘지 못하고
목마르게 내려앉는 사랑이다
이 나이에 오는 이별은
멀찍이 서서
건너지도 못하고
되돌이키지도 못하고
가는 한숨 속에 해소처럼 끊어지는 이별이다
지금
오는
이
이별은
다 져서 질 수도 없는 이별이다
이 시는 박규리 시인 시집 < 이 환장할 봄날에> 실린 시다. 처음 박규리 시를 보고서 느낀 점은 날것을 그대로 옮겨 놓은 정말 살아있는 시를 썼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시라는 것이 산문과 달라서 보는 사람마다 그 느낌을 오롯이 정의할 수 없듯이 나도 이 책을 볼때마다 늘 다르게 느낀다. 사계절 읽을 때마다 다르게 느끼는 건 아마도 시라서 누리는 특권인지 모르겠다.
박규리 시집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연애를 하기 전 내 소울메이트는 군대에 있었다. 그래서 주전부리와 함께 이 책을 함께 보냈는데 한 번에 반해서 훗날 나에게 연애를 하자고 농을 했을 때 결정타는 이 책을 보냈을 때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느낌이 왔다고 했다.
난 수줍게 웃으며 좋은 시와 작가 많은데 하필이면 이 책이 눈에 띄어 보낸 거라 짐짓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 했는데 친구는 시가 좋아서 필사까지 하면서 외웠다. 훗날 우리가 인연이 되어 연인이 되었을 때 이 책을 언급하며 여기에 실린 시처럼 사랑을 하자고 했었다.
시처럼 사랑하자 하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 한동안 물끄러미 물 잔 보는데 친구는 그런 내 표정이 웃겼는지 파안대소하며 뭐든 말을 하면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니 농담을 못하겠다며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던 기억이 있다.
박사과정으로 바쁜 나날이다. 하늘 보기보다는 땅을 보는 일이 많고 낮보다는 밤이 더 가까운 날들이다. 그래서 늘 하루가 이렇게 가는구나, 하면서 한숨 쉬는데 오늘 보니 벚꽃이 피었다. 세상에 봄이 왔다.
문득 이 시집이 생각이 났다.
브런치에 올리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좋은 글벗님들과 나누고 싶어 짤막하게 남긴다.
내게는 인연인 이 시들과 외에 좋은 시들이 담긴 박규리 시인 시들을 감상하며 좋은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