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접 Oct 05. 2023

술도 못 마시는데 건배사를 하라구요?

직장에서 처음으로 건배사를 했다.

꽤 시간이 지난 시기였다. 가을 문턱이라고 언제 여름이 끝나는가에 이야기는 시작되었고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가을에 별미 첫사랑 이야기로 마무리를 했다. 각자에 일을 하면서 점심을 끝으로 바쁘게 돌아갔다. 

아무런 이야기도 누구의 이야기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퇴근 한 시간에 갑자기 연구원장님이 들어오셨다.


"오늘 회식을 하지"

갑자기 훅 들어오는 이런 제안은 늘 당황스럽다.

다들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때 내 옆자리 동료는 "저 오늘 일찍 들어가야 하는데 미리.."

그러나 그 소리는 허공을 달리고 

"그럼 오늘 저녁 간단하게 먹지" 하며 돌아서는데  나도 밀린 일에 어이가 없었다.

나가시고 다들 "아니 뭐야.. 진짜"

그렇게 갈지 안 갈지 말이 분분하게 일어났다. 시끄러워지는 가운데 일은 밀리고 나는 밀린 일을 처리하느라 회식도 잊고 일을 했다.


결국 다수결 아닌 다수결로 이미 결제까지 해 놓았다는 고깃집으로 발걸음을 했다.

반갑지 않았다.

다닥다닥 붙어서 얼른 시간만 가라고 자리에 앉았다.

반갑지 않은 회식에 내 얼굴에 표정이 실렸는지 옆자리 동료가 '너무 티 난다' 며 웃으며 얼굴을 피라며 힌트를 주었다.

거울을 보며 대충 머리를 정리했다.

그러는 가운데 연구원장님에 말씀이 이어졌고 고기는 앞뒤로 뒤집어지고 있었다.

"자 그럼 간단히 한 잔 하지"

술잔을 어색하게 들며 아무 생각이 없이 있었다.

그때 연구원장님이 "응, 몽 연구원, 건배사 하지"

아무 소리를 못 들었다. 그냥 멍하게 있었다.

그때 다시 "몽 연구원 건배사 하지"

옆자리 동료가 "빨리해"

난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네?"

할 말도 없고 자리도 맘에 안 드는데 무슨 소리가 나오겠는가 싶어서 "저는 딱히 해본 적이 없어서.."

연구원장님 얼굴이 씰룩이며 "아니 그래서 안 하겠다는 거야?"

분위기가 다운이 되기 직전 "네 그럼 하겠습니다"

무슨 건배사가 있을까 싶어서 그냥 내질렀다."오늘도 고생 많았습니다"

사람들은 어색해하면서도 웃었고 옆자리 동료는 윙크를 하며 위로를 해주었다.


연구원장님은 "아니 , 누가 보면 일만 한 줄 알겠어?"

난 "아니 전 해 본 적도 없고 해서.."

연구원장님은"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먼저 연구원장님은 가셨다.

급하게 자리를 정리하고 집으로 가는 길 동료 연구원과 같은 버스를 탔다.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옆자리에 같이 타고 가는데 "저 정말 엄청 떨렸어요"

옆자리 동료는 "아니 뭐 있어. 그냥 하는 거지"

나는 "저 좀 이상했죠?"

그냥 픽 하고 웃었다.

동료는 "건배사 치고는 길었지" 하며 살짝 웃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각자 헤어졌다.


살면서 회식은 했지만 건배사를 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타인에 건배사를 들으면서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뜬금없는 건배사에 역시 인생은 알 수 없다는 생각에 그냥 웃음이 나왔다.

내 건배사는 내 인생에 흑역사로 남을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그다지 맘에 들지 않는다.


소처럼 일해서 돈을 번다는 의미 같아서 영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음에 건배사 제의가 들어온다면 좀 더 멋지게 해 보고 싶다.

하지만 그전에 건배사는 다시 하고 싶지 않다.

그냥 다 같이 손을 올리는 건배사는 왜 하는 건지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와 동동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