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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Oct 02. 2023

엄마와 동동주

대학을 들어가고 1학년 겨울에 그날은 아주 추웠다. 아빠는 할머니댁을 가시고 집에는 엄마와 나 혼자였다. 잠을 자려고 방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하는데 엄마가 나를 불렀다. 무슨 일인가 싶어 봤더니 엄마는 식탁에 골뱅이 소면에 동동주를 준비하고 계셨다. 


평소에 술을 정말 드시지 않으시는데 이건 무슨 일인가 싶어서 걱정을 하며 물었다. 엄마는 빙긋 웃으시며 아빠가 동동주 마시면 같이 마시며 웃으면서 당신이 마시면 왜 걱정부터 하냐며 괜히 퉁을 주셨다. 나는 엄마 주량을 아는데 동동주는 꽤 커서 아마 다 드시면 어지러워 쓰러지실 거라고 말하며 웃었다.


엄마에 술 실력을 그때 처음 들었다. 엄마는 사실 말술을 드시는 분이셨단다. 그래 따지고 보면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두 분 다 술을 다 잘 드셨는데 외할아버지가 수의사를 하시면서 자꾸 술을 받거나 물건으로 돈 대신 받아오시니 외할머니께서 화가 나셔서 술을 끊으시라고 하셨단다. 


외할머니 말씀에도 일리가 있어서 단번에는 아니고 몇 번 만에 술을 끊으셨고 외할머니는 지독한 시집살이에 야금야금 드시다가 말술을 드셨는데 언젠가 너무 편찮으셔서 단번에 술을 끊으셨단다. 그래서 엄마는 대학 때도 말술을 드셨는데 결혼을 하고 내가 아프고 이리저리 자식을 키우다 보니 술은 아닌 것 같아서 멀리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날은 눈이 엄청 내렸다. 우리 집은 돌계단이라 눈이 오면 엄청 쓸어야 한다. 미끄러워서 살기 불편한 단독주택이다 보니 난 나도 모르게 "내일 힘들겠네"라고 했더니 엄마는 "엄마가 할 테니 자거라" 하셨다.

그렇게 시작된 엄마와 동동주 한자은 시작이 되었다.


엄마는 나와 한 잔을 마시면서 내게 말씀하셨다.

"처음 널 낳고서 내가 얼마나 기뻤냐면 내 친구가 생겼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네가 너무 아파서 다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난 너를 가지고 나쁜 생각은 절대로 한 적 없고 나쁜 음식 먹은 적 없는 데 아프니 억울하기 짝이 없는 거지. 깐깐한 시어머니가 나에게 뭐라고 하시지 않을까 했는데, 반전은 할머니께서 그러시더라, 자식은 그냥 키워지는 게 아니니 그리 마음 쓰지 말라고 그 말에 난 펑펑 울었어". 난 많이 아팠고 엄마 폐물을 다 팔아먹은 사람이다.  난 고개를 아래로 하고 눈물을 훔쳤다.

엄마는 "울지 마"

난 "고마워 엄마"


엄마는 "내가 너랑 술 한 잔을 나눌 때가 언제일까 생각을 했는데 , 대학을 가면 합법적으로 성인이니까 내가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니?"

난 "그래?"

엄마는 "학교에서 술을 마셨어?"

난"아니"

실제로 난 학교에서 술을 마시지 않았다. 아니 마시지 못했다. 바빴고 술에 관심이 없었다.

남들은 술을 마셔야 어른이 된 거라 했지만 그렇게 따지면 우리 동네에 중학교 때부터 술을 마신 친구는 나보다 한참 어른이다. 그래서 결국은 술은 그냥 각자의 취향이라는 결론이 앞서서 난 최대한 미루고 싶었다.


꿀꿀이 슈퍼집에서 보는 어른들에 모습은 장난과 유머가 있지만 애달픔이 있었고 그 애달픔에 얼굴이 붉어져 얼마나 더 붉어져야 저들에 모습에서 넉넉한 모습이 보일까 안쓰러울 때가 있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마신 철수 아저씨 생각이 나서 술이 원수라는 말이 귀에 앵앵거릴 때도 있었다.

결국은 내게 술은 그저 그런 품목이었다.


엄마는 동동주를 한 잔 따라 주시더니 내게 "마셔봐, 그리고 많이는 말고"

난 웃으며 "엄마와 마시니 따뜻해"

엄마는 "그러게"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폭설을 보면서 엄마와 시간을 보내는데 엄마는 이제 꿈을 이뤘다며 정말 기뻐하셨다.


사실 인생을 살면서 기쁨을 느낀다는 것이 별게 아닌데 엄마는 그 별게 아님을 그제야 가졌다며 당신에 일기장에 빼곡하게 쓰셨다. 난 그런 엄마를 보며 어깨를 안으며 "엄마 사랑해"라고 말을 했다.

엄마는 늘 내게 친구로 지내자라고 말씀을 하셨고 난 그런 엄마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이후 엄마는 아빠와 간단한 반주를 하시면 나를 부르셨고 난 그럼 없는 용기 있는 용기 다 쥐어짜서 노래도 불렀다. 그럼 부모님은 깔깔 웃으셨고 내심 난 그분들의 웃음에 눈물이 났다. 이 별것 없음에 기뻐하심에 난 정말 불효녀였네라는 생각이 겹치니 좀 더 애교가 없음에 좀 더 다정함이 없음에 죄송했다.


엄마와 동동주를 마신 후 가끔 내가 집에 갈 때 사들고 간다. 그럼 엄마는 귀신같이 안주를 만들어서 내어 놓으시고 한 잔 한 잔 하시면서 이야기를 하신다. 난 이럴 때 모녀가 아닌 친구 같은 엄마와 이야기를 하며 같이 늙어감을 느낀다. 엄마도 그렇게 생각을 하시겠지 한다. 


늘 감사합니다. 엄마 자주 찾아뵙지 못하지만 다음에 찾아뵐 때는 동동주 들고 찾아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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