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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Mar 04. 2022

엄마는 힘들어도 "괜찮아" 라고 말하는 사람.

이 이야기는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난 2주에 한 번씩 있는 휴일에 집에 갔다. 엄마는 늘 내가 가면 반갑게 안아주셨다. 그런 엄마가 좋아서 금요일이 되면 짐을 꾸려 용돈을 아껴서 엄마가 좋아하는 백합 한 송이를 사가 져 갔다. 그럼 엄마는 식탁에 그저 그런 꽃병이지만 보란 듯이 자랑을 하셨다. 그럼 식구들은 "어 꽃이네?" 했고 아빠는 "큰 딸 왔네" 하셨다. 



엄마와 나와의 관계는 다른 집 못지않은 관계였다. 하지만 난 자식, 엄마의 마음을 다 알기란 어려웠다. 그리고 그해 가을에 집에 그날도 다르지 않게 갔다. 그런데 집안 분위기가 참으로 무거웠다. 아빠는 어쩔 줄 몰라하셨고 동생은 눈이 부어있었다. 눈물이 말라서 눈이 퉁퉁 부어서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고 문 앞까지 나와 있었다. 



안 좋은 일이 있었다는 걸 직감한 나는 "무슨 일이니?" 여동생은 "언니 엄마가 암 이래" 그리고 주저앉아 울었다. 우는 동생을 뒤로하고 집으로 뛰어 들어가, "엄마 엄마 암이야?" 엄마는 "괜찮아" 하시며 오히려 나를 안심시킬 요량으로 병원에서 들으신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랬다. 엄마는 늘 밥을 많이 드셨다. 속이 쓰리다고 밥을 먹으면 좀 덜하다 하시며 밥을 드셨고 그러다 안되면 토악질을 하시고 그런 일상이 반복이 되니 아빠는 엄마에게 겔포스를 권하셨다. 그걸 드시고 엄마는 차도를 보였는지 늘 달고 사시다가 엄마가 쓰러지셨다. 아빠가 집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변기를 붙잡고 쓰러지셨는지 엄마의 혈색은 엉망이었다고 하셨다. 급하게 119를 불러서 갔고 거기서 진단은 엄마의 위 상태가 엉망이었고 지역에서는 해결할 수 없으니 큰 병원으로 가라는 진단에 , 엄마는 위염이 심하겠거니 하고 가셨다가 위암 2기라는 진단을 받고서 세상을 처음으로 원망하셨단다. 



아빠는 이때, 처음으로 많이 우셨다. 가난한 집에 시집와서 뭐 하나 번듯하게 해 준 것도 없는데 암까지 걸려서 저렇게 아픈 아내는 아빠에게는 늘 마음의 짐이었고 결국 엄마는 큰 수술을 하셨다. 난 결국 아빠 엄마 없이 동생과 지방에서 학교를 다녔다. 참 웃겼다. 수술 날짜는 하필이면 2학기 중간고사와 맞물려서 난 시험을 치고 가야 했다. 결국 그렇게 치고 엄마를 처음 만났는데 무슨 줄이 그렇게 많은지 코에 걸린 줄에 엄마는 의지를 하고 겨우 목소리를 작게 하고서는 "엄마 괜찮아" 하시는데 난 눈물이 나서 "엄마 이런데도 괜찮아라는 소리가 나와?" 라며 울었다.



 엄마가 계신 곳은 4인실이었다. 엄마는 가난한 집에서 6인실은 가야 한다고 했지만 6인실은 자리도 없었지만 아빠가 반대하셨다. 최대한 엄마를 편하게 병원생활로 머무르게 하고 싶었던 아빠의 작은 마음이었다. 학교 때문에 결국은 주말에 시골로 내려와야 했다. 휴대폰도 없던 그 시절, 공중전화로 내선 번호로 병원에 전화하면 엄마는 늘 "괜찮아"라는 이야기로 시작했다. 난 그런 엄마의 마음을 다 알 수 없지만 자식들이 걱정이 되어 말씀하시는 건 알겠지만 화가 났다. 그래서 한 번은 "엄마 안 괜찮아"라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엄마는 "괜찮다니까" 하시며 엄마는 엄마의 이야기를 하셨다. 늘 "괜찮아"라는 이야기를 하시며 밥은 챙겨 먹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확인하는 엄마의 걱정에 난 마음이 아팠다.



엄마는 방사선까지 하고 2년을 암투병과 싸우시고 결국은 이겨내셨다. 집에서는 파티를 열었고 엄마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셨다.

아빠는 "고마워"라는 말씀을 하시며 엄마를 안으셨고 엄마는 "다 괜찮아"라는 말로 화답을 하셨다.

엄마는 늘 그러신다. "괜찮아" 도대체 엄마에게 "괜찮아"라는 단어는 주술인지 늘 말씀하시는데

요즘도 달라지신 건 없다. 내가 힘들어서 서울생활 접을까? 하고 물어보면 "괜찮아, 다 좋아진다"라고 말씀하시고 그래서 난 궁금했다. 엄마가 낙관적인 사람인지, 아빠 말씀으로는 엄마는 절대로 낙관주의자가 아니라고 하셨다. 그러나 엄마는 자식을 키우면서 낙관주의자로 노력을 하신 거라고 아빠는 분명 말씀하셨다.



어제도 전화를 드렸더니 "괜찮아"라는 말씀을 하셨다.

난 엄마에게 "엄마 다 괜찮아?"라고 되물었더니 엄마는 "그럼"이라고 답을 해 주셨다.

나도 엄마처럼 낙관주의자가 되려고 노력해보려고 한다.

왜냐고 물으면 글쎄, 나도 엄마 딸이니까?... 정도로. by-몽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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