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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Nov 07. 2023

공중전화를 했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휴대폰으론 전화를 하거나 카톡을 하지만 내가 대학을 다닐 때까지는 그래도 마지막 세대라고 해야 할까 공중전화박스에서 카드를 사거나 동전을 모아서 전화를 해서 낭만을 즐길 때가 있었다. 그때 전화를 가장 많이 했던 사람은 엄마, 그다음은 내 영혼에 단짝이었다. 엄마에게는 일상생활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했고 영혼에 단짝은 그때 휴학을 하고 고향에 내려가서 집안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수업을 다 마치면 대충 오후 5시 그리고 어쩌다 회의가 끝나고 7시 즈음 전화를 하면 가장 바쁜 시간이야 하면서도 전화를 받으면 활짝 웃으며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냈냐고 물었다. 그럼 난 "오늘도 씩씩하게 공부를 열심히 했지"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어디론가 자리를 옮기고서는 잠깐만이라는 말을 남기고서는 피아노를 연주해 주었다. 난 괜히 바쁜데 무슨, 이라고 짐작 모른 척했지만 친구는 진심을 담아서 연주를 해주었고 특별히 좋아하는 김동률 노래를 정말 열심히 연주해주었다. 그때 가장 아쉬웠던 건 이럴 거면 그냥 휴대폰으로 전화를 했을 텐데 녹음을 못했던 것이 가장 아쉬웠지만 그걸 알았는지 늘 연주를 해주었다. 친구라도 떨렸는지 가끔 틀리는 반주가 나오면 자신도 빵 하고 터져서 "미안 미안, 나도 떨린다" 하고 이야기를 넘겼다. 나는 "반음이 틀렸어. 샵에서 "라고 하면 "야 귀신인데" 하고 말을 이어갔고 나는 "나도 피아노만 10년 넘게 배웠어요"라고 웃었다. 뒷사람들이 줄을 서게 되면 "야 나 줄 뒤에"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렇게 가을이 지면 학교는 단풍으로 물이 들어서 장관이었다. 사진을 찍어서 친구에게 보냈고 친구는 그걸 배경화면으로 보냈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이 친구에게는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기보다는 공중전화로 전화를 더 많이 했다. 친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지금 생각하면 단 한 번도 "넌 왜 공중전화로 하니?"라고 묻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고 간단하게 밥을 먹고 공중전화에 가서 전화를 하고 하루에 있었던 일 중에서 속상한 일이 있으면 이야기를 하고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다.

사는 게 이렇게 힘들다면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세상은 얼마나 힘들까를 걱정했다. 그때 우리 둘에게는 공통점이 김광석 노래였다. 친구는 김광석 노래에 빗대어서 인생은 바람처럼 흘러간다고 이야기를 했고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가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고 내가 하는 아르바이트가 많으니 좀 줄이라고 조언했지만 난 그건 힘들다고 난 괜히 내 삶에 걱정을 한 트럭 이야기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 뒤늦은 사춘기를 이 친구와 함께 한 듯하다. 하긴 이 친구도 기숙사 생활만 했어서 사회에 나와서 막상 겪어야 하는 일들에 한참이나 어려워했었다. 우리는 사회에 대한 어두운 면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지금 말하면 흙수저 삶에 대한 어려움에 대해서 정말 열띤 논쟁을 펼쳤던 것 같다.


하지만 만나면 동동주 한 그릇을 시켜 놓고 8시간을 이야기하면서 살았다.

대학을 졸업하고서는 공중전화 사용이 줄었다. 아니 거의 없었다. 친구는 군대를 갔고 나는 회사에 취직을 하고 서로 바빴고 그리고 막상 공중전화기가 많이 사라졌다. 그래서 그래 이렇게 사라져 가는구나, 하고 어쩌다 생각나는 기억에 한 편으로 남았다. 그래서 그런가 어제 집에 가는 길에 공중전화박스를 봤는데 그때 그 생각에 울컥했다.

누구에게나 공중전화박스에 대한 기억이 있지 않을까, 나는 그 생각에 어제는 정말 한참을 서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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