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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Nov 29. 2023

나이가 드니 소주가 달 때가 온다.

헛헛한 마음에 어제는 집으로 가는 길 내 루틴을 깨고 국밥집을 들렀다. 다들 추워서 그런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음식을 기다리는 사람들, 텔레비전에 시선을 모으고 왔다 갔다 서빙을 하시는 분을 외에는 조용했다. 간단한 뉴스를 구경하면서 내 메뉴를 고르는데 사실 밥보다는 국물이 그리워서 들어갔기에 난 간단한 콩나물 국밥을 주문하고 주류에서 소주를 한 병 주문했다. 


혼밥 하는 자리에서 소주를 한 병 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연말이라 그런지 헛헛함에 괜히 한 잔 하고 싶었다. 대학 때 이런 경우가 있었다. 그 친구도 혼밥을 하는 친구였는데 그 친구는 혼자서 혼밥을 하는 레벨이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때 친구는 가장 높은 레벨이 혼자서 소주를 마시면서 즐기는 수준까지 가면 그건 고수라고 했는데 어느덧 나이가 들면서 나도 그렇게 혼밥을 하고 보니 나도 이제는 나이가 들어 나보다 했다.


드디어 뜨끈한 국밥에 소주 한 병을 두고 나는 멍하게 있었다. 밥은 패스하고 국물만 슬쩍 먹고서는 소주를 쫘르르 따고서는 한 모금했다. 빈속이라 그런지 찌르르하는 느낌이 들었다. '와 다들 이런 맛으로 먹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느낌이 묘했다. 사실 술을 좋아하지도 않고 힘들어도 술을 찾는 법이 없는데 괜히 먹게 되었다 보니 그냥 즐기자,라는 생각이 들어서 술만 쪼르르 마셨다. 반찬은 깍두기를 먹으며 그렇게 반 병을 먹으니 술기운이 올라왔다. 그리고 순간 어느 순간 달다,라는 맛이 느껴졌다.


'이상하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냄새를 맡았는데 분명 알코올이다. 그런데 내가 느낀 맛이 달다,라는 느낌은 정말 처음이었다. 이래서 아빠는 나에게 "살면서 술이 달 때가 온다 그때는 진짜 힘들다는 뜻이니 집에 오너라" 하셨다. 그때는 그런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뭐래 아빠, 어떻게 술이 달아?"라고 말을 했고 아빠는 "살면서 모든 게 바뀔 때가 있고 음식 취향 이런 게 바뀌지"라고 하셨다.

생각해 보니 난 다이어트라는 명목으로 채식주의자가 되었고 고기는 안 먹고 생선을 즐겨 먹는다. 그리고 하루 한 끼 먹으면서 차를 즐겨 마시니 분명 30대와는 다르기는 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빠는 술을 드실 때 달다고 하시며 드셨던 술이 있었다. 한 참 집이 어려웠는데 엄마는 아빠에게 술을 줄이라고 하셨고 아빠는 이렇게라도 한 잔 하는 거지 하시며 드셨는데 그때 "아 달다" 하시면서 한 잔 하셨는데 엄마는 그때 "오죽 힘들면"이라고 하셨다. 그때는 정말 우리 집이 힘들 때였다. 그래서 그 순간이 지나가길 기도로 살았던 시절이었는데 나는 그 시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뭐가 힘든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술이 달았다. 참 신기하고 신기했다.


한 잔 하면서 친구에게 술이 달다,라고 카톡을 보냈더니 친구는 한 병 해야겠다는 답톡을 보내왔는데 날은 춥고 내 마음이 헛헛해서 달아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정말 진기한 체험이었다.

아메리카노를 그렇게 즐겨 마셔도 달다는 느낌을 느껴 본 적이 없는데 참 살면서 별 일이 다 있다.


나이가 들면 뭐든 달라진다,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는데 소주가 달아진 걸 보니 나도 나이가 들었나 보다.

어제 마신 소주 반 병을 뒤로하고 집으로 가는데 하늘은 어두웠고 바람은 차고 그런데 나도 모르게 속으로 울었다. 그리고 눈에서 나는 눈물보다 마음으로 우는 눈물이 더 깊다는 걸 알고서 한숨을 내쉬며 인생이 쉬우면 그건 반칙이라고 그렇게 누웠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긴 시간 동안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이제 내 나이는 멋있게 늙어야 한다. 고민이 많다. 친구는 내게 생각이 많은 게 문제라고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 성격인 것을.

다음에 마시는 술도 달았으면 한다.


반가웠다. 달았던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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