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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Dec 16. 2023

엄마의 떡국

12월이 되면 엄마는 늘 떡국을 하셨다. 쌀을 한 바가지 한 바가지 들통에 담아서 가늠을 하신 뒤 아빠 자전거에 실어서 떡을 뽑는 곳에서 가래떡으로 뽑아서 새벽부터 바쁘게 움직이셨다. 나는 늘 말하지만 엄마의 노고에 늘 감사드린다. 그럼 엄마는 새벽부터 잽싸게 움직이시며 나를 깨운다."가자" 나는 눈도 덜 뜬 상태로 정신없이 엄마를 따라가면 이미 많은 어르신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계신다.


"왔나?" 나는 "네" 엄마는 "우리 가래떡" 하시며 웃으시며 쌀을 전달하시면 주인분은 "앞사람들 많아서 한 4시간 걸리겠다" 하면 엄마는 "기다리지 뭐"하시며 그렇게 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셨다. 엄마는 외할머니와도 그렇게 떡국을 만드셨다고 한다. 외할머니도 떡국을 참 좋아하셨지만 외할아버지는 킬러 수준이었다고 하셨다. 밥을 안 드시고 떡국을 너무 드셔서 외할머니는 애도 아니고 왜 그러시냐고 싸우시기도 하셨지만 그 이야기는 떡국을 드실 때도 고명이나 기타 들어가는 건 다 들어가야 해서 어지간한 밥상을 차리는 것보다 힘드셨다고 한다. 그래서 외할머니는 그게 싫어서 되도록이면 늦게 떡국을 빼셨는데 , 엄마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대화가 재미있으셔서 웃으셨다고 했다. 생각을 해보니 우리 아빠도 떡국을 참 좋아하신다.


뜨근한 가래떡 한 줄을 중간에 가위로 잘라주시면 난 뜨겁지만 맛있게 먹고 "엄마도" 하면서 엄마와 웃으며 그렇게 아침을 시작했다. 엄마는 가래떡이 좀 굳어야 한 다시며 그대로 찬기운이 도는 방에 굳혀서 말리셨고 어느 정도 칼이 들어갈 즈음에는 정말 큰 공사를 하는 것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떡국 모양으로 어슷하게 자르셨는데 그게 신기해서 몇 번을 따라 했지만 처음에는 비슷했지만 중간에는 동그랑땡으로 잘라서 엄마에게 혼났다. 엄마는 웃으시며 "먹거리에 장난치면 너 혼나" 하셨는데 나는 웃으며 "엄마 난 진심이야" 하며 웃으며 다시 배우기를 반복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엄마를 도와 드릴 수 있었다.


대략 몇 가락을 썰고 나면 엄마는 고명을 만드시는데 정육점에서 갈아 온 소고기를 참기름에 볶아서 고명으로 만들고 김은 내 몫이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길게 잘라서 접시에 두면 되었는데 깐깐한 우리 엄마 그 간격이 다르면 또 혼났다. 나중에는 엄마 눈속임을 한다고 하다가 걸려서 엄마는 그럴 거면 하지 말라고 하셔서 정말 정직하게 했다. 마지막 피날레는 계란이었는데 엄마는 흰자와 노른자를 나뉘어서 하셨고 그걸 곱게 구워서 또 나뉘어 잘라서 고명으로 얹으셨는데 정말 맛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렇게 오래 걸리는 음식을 엄마는 매일 아침 어떻게 하셨을까 싶다. 하지만 엄마는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음식 먹는 것을 참 좋아하셨고 아빠는 "아 좋다" 하시며 두 그릇 드셔도 질려하시지 않으셨으니 말 다했다.


어제 마트를 갔는데 떡국이 보였다. 갑자기 불현듯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너무 추워서 엄마가 장화를 사주셨다. 발목까지 눈이 차올라서 춥다고 사주셨는데 그걸 신고 학교에서 열심히 놀고 집에 갔더니 엄마는 따뜻한 떡국을 내어 주셨다. 발은 꽁꽁 얼었지 손도 감각은 없는데 그걸 먹으니 온몸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어린 내가 느낀 그 따뜻함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때 생각에 추억을 소환하여 만들어 보았다. 절대로 엄마를 따라갈 순 없지만 최대한 비슷하게, 그리고 천천히 추억을 곱씹으며 먹어보았다. 역시 음식은 엄마가 해 준 음식이 최고다. 하지만 이렇게 먹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음식에 추억이 있다는 건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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