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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Mar 03. 2024

폐지할머니와 바나나 우유

내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은 정말 극명하게 갈린다. 하늘을 볼 수 있으며 차선이 다 보인다. 그래서 맛집뷰라고 부른다. 나도 그래서 만족하고 사는 편이다. 그런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면 폐지를 줍고 그걸 얹어서 걸어가시는 분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날이었다. 눈이 내리고 한 치 앞을 볼 수 없었다. 날이 너무 추워서 눈에서 눈물이 났다. 나도 모르게 어깨는 굽어지고 손은 얼고 그래서 핫팩을 흔들며 신호등을 기다리는데 노파가 신호등을 무시하는듯한 행동으로 폐지를 자신의 키의 5배 돼 보이는 양을 끌고 걸어오는 게 아닌가, 나는 '아 위험한데'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 차들은 "빵빵 빵" 신호음을 알렸지만 거기에 전혀 반응 없이 힘들게 끌고 계셨다. 사람들은 "저 노인네 뭐야?" 라며 이야기를 했고 이제는 정말 누군가가 제지를 해야 했다.

나도 모르게 "할머니 위험해요"라고 하고 뛰어갔다.


할머니는 못 들으셨는지 걸음을 옮기셨다. 나도 모르게 그 짐의 뒤를 밀며 "할머니 들리세요?"라고 말을 했고 할머니는 역시 말씀이 없으셨다. 드디어 바뀐 신호. 녹색불이 들어왔고 나는 다행이라는 생각에 "할머니 여기 신호가 바뀌면 다니세요" 그제야 뒤를 돌아보신 할머니는 "어쩐지 가볍더라니" 나는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갑자기 할머니는 "누군데 이렇게 밀어?" 할머니는 노기 어린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아니 할머니께서 빨간불에 건너셔서 위험하실 것 같아 밀었어요" 할머니는 "뭐라고?" 역시 할머니는 잘 듣지 못하셨다. 다시 한번 말씀을 드리자 그제야 "이 일 하면서 그 신호 다 지키면 돈 못 벌어" 칼칼한 할머니의 음성이 얼마나 고단한지가 묻어 나왔다. 그렇게 끝까지 가니 편의점이 나왔다.


"할머니 춥지 않으세요?" 할머니는 "춥지 겨울인데" 나는 "할머니 잠깐만 기다리세요' 하고 후드득 들어가서 눈에 보이는 걸 찾았다.

"저기 혹시 호빵 있나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나에게 찜기에 있다고 알려주었고 다행히 두 개가 있었다. 나는 급히 포장을 하고 바나나 우유를 샀다.

밖에서 기다리시는 할머니께 가기 위해 마음은 급했고 할머니는 나를 보셨다.

계산을 하고 나온 나는 할머니께 "할머니 추운데 이거라도 드세요"라고 말을 하자 "나 돈 없어"라고 말씀하셨다. "아니 그냥 드리는 거예요" 할머니는 "돈이 없다고"라고 크게 말씀을 하셔서 난감해진 난 "아니 그냥 드세요"라고 나도 의도치 않게 크게 말씀을 드려야 했다. 무슨 상황인지 그제야 이해하신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급히 드셨고 "나 갑니다" 하시며 자리를 뜨셨다.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를 하자 할머니는 손으로 인사를 하셨고 나도 모르게 할머니가 가시는 길을 계속 보게 되었다.



이곳 오피스텔에 오기 전 원룸 집 뒤에는 전문적으로 폐지를 모으는 분이 계셔서 배달 박스를 직접 전달해 드렸다. 그러면 고맙다고 하셨고 그 집 주변 분들도 다들 아시고 모아주셨다. 사람 인심이 참 없다는 서울에서도 인심이 생기는 곳이었다. 어쩌다 젖은 박스를 주시는 분에게는 박한 말씀을 하시긴 했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그분에게 "굶지 마셔"라는 말씀을 하는 걸 들었다.


초등학교 사회시간에 배웠다. 사람은 서로서로 돕고 사는 거라고. 그때는 잘 몰랐다. 사람 그냥 혼자 사는 거지라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배운다. 맞다, 서로서로 돕고 사는 거다. 그 할머니께서는 신호등을 잘 키시고 사고가 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바람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괜스레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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