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접 Mar 10. 2022

           아빠의 라면밥

아빠는 라면밥을 잘 만들어 주셨다. 5형제로 살아온 아빠는 할머니는 여자든 남자든 뭐든 잘해야 한다고 집안일을 공평하게 나누시고 음식도 가르치셨다. 아빠의 특기는 '라면밥'이다. 양은 냄비에 라면을 넣고 식은 밥을 넣어서 라면밥을 만들어 주셨다. 처음에는 "에이 아빠 이게 뭐야"라고 시큰둥하게 반응을 했었다. 하지만 첫 입을 먹고서 "아빠 이거 신기한데?"라고 눈을 크게 떴다. 아빠는 "신기하고 맛있지?" 난 고개를 끄덕이며 "응" 했다.



썰은 이렇다. 엄마가 동네 부녀회에서 돈이 모였다고 전세 버스로 놀러를 가셨다. 그래서 집에 엄마가 늦게 온다는 연락을 받고 아빠가 밥을 하게 되셨다. 평소 아빠는 밥보다는 반찬을 하셨다. 그래서 늘 우리는 반찬을 한 아빠를 기억하지 밥을 기억하는 아빠는 없었다.


그날 아빠는 엄마의 전화를 받고 "애들아 오늘 엄마가 무지하게 늦으신단다, 우리끼리 먹어야겠다" 하시며 "보자 양은 냄비가.." 하시며 이리저리 찾으셨다. 여동생은 "아빠 우리 그냥 짜장면 시켜 먹으면 안 될까?" 하고 사악한 유혹을 했지만 아빠는 "그것보다 10배는 맛있는 거 해줄게" 여동생은 미덥지 않아서" 치 그냥 사기 싫어서 그런 거지?" 하고 뾰로통하게 있었고 아빠는 "딸 아빠 못 믿어?" 하면서 다시 대화를 이어 나가셨다 다.



여동생은 "믿지 그런데 아빠, 엄마는 매일 밥하는데 엄마 없을 때 시켜 먹어야지" 하면서 다시 설득에 나섰다. 아빠는 물러서지 않고 "그래 그럼 아빠가 그 짜장면보다 열 배는 맛있는 라면밥 만들어줄게" 눈을 동그랗게 뜨며 "라면밥?" "응" 그렇게 시작된 라면밥은 양은 냄비에 일단 라면을 끓인다 그리고 식은 밥을 넣고 자작자작할 때까지 물을 잘 봐야 한다. 그런 다음 아무 양념 없이 라면에 밥이 되면 라면밥이 되어서 신기하게 그게 그렇게 맛있다.


아빠가 "짠 다 됐다" 하시며 싱글벙글 웃으셨고 우리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일단 신문을 깔고 양은 냄비를 내리시며 "먹어봐"

숟가락으로 한 술 먹었는데 이럴 수가 생각의 배신이었다.

"아빠 맛있어"

아빠는 "그렇지?"

박수를 치시며 웃으셨다.

난 "신기하네"

아빠는 "이거 아빠가 직접 개발한 거야, 엄마도 모른다"

난 "치, 그냥 이거 물 넣고 라면에 밥인데?"


아빠는 "시간, 엄마가 음식에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하셨잖아"

우리 두 자매는 고개를 끄덕이며 야금야금 먹었다. 그리고 마지막 하이라이트 양은 냄비에 눌어붙은 누룽지를 숟가락으로 긁어먹으며 웃으며 마무리를 지었다.

그렇게 배가 불러서 책을 보며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엄마가 도착하셨다.


"딸들 엄마야"

엄마는 "밥은 먹었어?"

아빠는 "우리가 아마 백배는 맛있는 거 먹었지"

엄마는 "무슨 소리지?" 하시며 웃으셨고 나중에 이야기를 들으시고 "아이고 그 라면밥"하시며 웃으셨다.


알고 보니 그 밥은 엄마와 연애하실 때도 많이 하셨단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라면밥 이야기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겨울밤을 보냈다.

이렇게 날이 차면 라면밥이 먹고 싶다. 볼 것도 먹을 것이 화려하지 않았어도 따뜻했던 라면밥이 먹고 싶다.


이야기에 반전이 있다. 우리 집은 그때 전세였다. 안주인이 있었고 우리는 바깥채에 살았는데 난 그날 많이 먹은 라면밥에 배가 아팠다. 화장실이 바깥에 있어서 어지간하면 저녁에는 안 가려고 참았는데, 그날은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아빠나 엄마를 찾았는데 부엌에서 나직 막하게 아빠와 엄마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엄마는 아빠에게 "그러지 말고 짜장면 시켜주지 그랬어" 아빠는 "자기는 야유해 가는데 옷이 변변찮았지" 엄마는 "내가 어린애야" 하셨고 아빠는 "참.. 내가 못났지.." 엄마는 "부모가 어디 쉬운가.." 하시며 한숨을 쉬셨다. 그리고 아빠는" 짜장면 한 그릇도 못 사주는 아빠가 좋다고 애들은 먹고.." 엄마는 "그래도 애들 표정이 좋던데" 그렇게 대화를 들으려고 듣은 건 아닌데 맘이 아파서 난 결국 혼자서 그 무섭다는 화장실을 혼자 갔다. 끼익 하는 소리에 아빠는 "아니 딸 왜 혼자 갔어?"라고 물으셨고 난 "이제는 혼자 다녀야지" 하면서 난 모른 척을 했다. 아빠는 "라면밥이 맛있어서 많이 먹었나 보다"라고 하셨고 난 "그러게" 하면서 그렇게 잠을 잘 수 있었다. 긴 밤이었다. 


By  몽접


작가의 이전글 짜장면을 비비는 게 아니라 추억을 비빕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