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는 지인이 집을 구해야 한다고 해서 고향을 갔었다. 나름 고향부심을 부리며 이리저리 다니는데 갑자기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지인은 부동산 중개인과 함께 자동차로 많은 집을 보시며 얼마 남지 않은 자신과 닮은 집을 찾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고 나는 옆에서 그냥 들었다.
생각하면 난 잘 살았다. 그런데 고향이라는 단어가 왜 그렇게 낯설게 느껴지는지 이유를 잘 몰랐다.
몇 바퀴를 돌았는지 모른다. 나가야 하는 집주인과 들어가야 하는 세입자 날짜를 조율하고 대충 몇 곳을 선택하고 나서야 겨우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기는 여기서 그럼 중학교?"
나는 "네"
지인 연구원은 "그럼 여기 너무 잘 알겠다"
나는 "많이 바뀌고 그렇죠"
사실이 그렇다. 지역이다 보니 많은 것들이 조금씩 변화라는 단어로 바뀌었다.
나도 4년 만에 갔다.
원래 고향이긴 한데 엄마 아빠가 더 멀리 들어가셔서 4년 만에 갔더니 나도 어지러웠다.
그리고 이어진 대화 "남편이 여기서 살아야 하니 적응을 해야 하는데 나 될까?"
나는 "여기 백화점도 없고 시간이 조금은 늦게 흐르는 느낌이 드실 거예요"
지인은"그렇구나 그럼 옷은?"
난감했다. "그냥 시장에서 브랜드로 사면되지 않을까요?"
딱히 말을 하기 어려운 것이 나도 구입을 한 적이 없어서 몰랐다.
그렇게 한 바퀴 돈다는 것이 한 시간이면 끝나는 시장 코스였다.
남편직업으로 지역발령 때문에 집을 알아보는 지인을 보면서 갑자기 내가 답답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몽접아 너는 살려고 하면 살겠니?'
시간이 걸려 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금방 나왔다.
'아니 여기는 아니야'
그렇다. 그냥 답답했다.
언제가 친구에게 고향은 시간이 늦게 흐르고 재촉하는 게 없어서 참 좋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갑자기 그 흔한 한강이 그리운 것은 무슨 의미였는지 아직도 못 푼 숙제이다.
시간이 흘러 같이 서울행 버스를 타고 올라와서 밥을 먹는데 지인은 "확실하게 다르긴 하다"라는 말씀을 남기시고 가셨다.
나는 잠시 시간을 내서 한강을 걸었다.
그리고 멍하게 강멍을 했다.
나는 서울이 싫었다. 가난한 내게 너무 많은 걸 숙제로 내 준 공간이라는 생각에 도전이라는 단어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지 이게 좋다.
그러니까 도전이 좋은 게 아니라 이렇게 한강을 걸으며 사색하는 게 좋다.
그래서 여기를 떠나 좁은 동네를 거쳐 시간이 더딘 곳으로 가는 게 어색하다.
생각을 했다. 만약 그곳에 부모님이 계신다면 어땠을까? 그럼 아마도 부담을 덜었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에게는 회귀본능이라는 게 있다는데 나는 그럼 어디로 가야 할까?
갑자기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라 한참 서울이 싫어서 미친 듯이 돈 벌어서 빨리 고향에 가야지,라고 이를 물고 눈물을 흘린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니 참 사람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당장 서울을 떠나면 불편해지는 것들을 생각하고 내가 여기에 있어야 하는 이유들이 마치 문법화인 것처럼 나를 구겨 넣는다는 생각에 그냥 잠시 두기로 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내가 서울을 좋아했다는 거다.
서울의 달 노래처럼 언젠가는 고향에 가야지,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닌 거다. 그래서 나는 지금 조금은 더 있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