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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Sep 18. 2024

사연 없는 사람 없고 아픔 없는 사람 없었던 추석.

올해 추석은 작년과 많이 달랐다. 일단 추석은 작년과 다르게 많은 말이 오갔고 가족이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하기 힘들었던 말들을 했다. 처음 만났을 때 얼마나 걸렸는지 이야기를 했고 추석 전에 음식을 하느라 너무 바빴다. 할머니께서 미리  해 놓으신 음식들이 있었지만 늘 할머니는 과제를 주듯이 재료들을 준비해 주시고 숙제처럼 일과를 주시는데 그것들을 하느라 시간이 참 많이 걸렸다. 우리 집은 제일 큰 아버지의 아들이 결혼을 해서 그 아들이 또 아들을 이렇게 복잡한 구조라 다 모이면 40명이 넘는다.


기본 밥그릇 국그릇이 40개가 넘는 대가족 구조에 허리가 휘는 구조라 어떻게 보면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난 막내라 설거지를 했다.


그리고 추석을 맞이하고 떠들썩했던 아침 추석을 보내고 오후가 되어서 다과를 마련했다. 애들은 밖에서 놀고 어른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할머니는 " 그래 다들 잘 보내지?"라고 말씀을 시작하셨고 큰 어머님께서는 "어머니 저희 가족은 올해 정말 죽을 뻔했어요" 할머니는 미간이 찌그러지시며 "아니 왜?" 드시던 과일을 내려놓으시며 매우 걱정을 하셨다.

"아니 보이스피싱을 당해서.."

할머니는 "허... 억 그래? 얼마나?"

큰어머니는 주변 눈들을 보시더니 "거의 4천만 원요.." 할머니는 "아니 좀 꼼꼼하게.. 아니다.. 속상한 사람만 속상하지.. 알았다." 그리고 할머니는 "아니 그게 나쁜 놈들이 달려들면 그렇다. 차차 벌어서 갚는다 생각해라. 그 생각에 얽매이면 속병 생겨서 병원신세다" 큰어머니는 "네.. 저희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참 나쁜 놈들"

그렇게 다들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이번에는 셋째 작은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저희는 보이스 피싱은 아니고 집이 문제가 있었어요. 집 계약 했잖아요. 이중계약 할 뻔했는데 다행히도 빨리 알아서 겨우 막았어요. 아이고 얼마나 가슴이 철렁하던지.."

다들 "아니 그래?"

셋째 작은어머니는 "아니 이제 애들 교육 때문에 이사를 결정하고 마지막 계약서를 쓰려고 주인을 만나서 직접 계약을 하려고 보니까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법적으로 따지고 따져서 하겠다고 해서 겨우 풀어서 거의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려서 꼬인 거 풀고 정신없이 살았어요.."

우리 엄마는 "저희는 그런 건 없었는데 제가 아팠어요"

할머니는 안경을 올리시며 "그렇구나"

엄마는 " 살다 보니 저는 정말 감기하나도 안 걸리고 살았는데 이번에 허리디스크 크게 걸리고 나니 사는 게 이렇게 불편하구나 싶어서 정말 고생했는데 정말 건강이 중요하구나를 알았어요."


할머니는 "아니 추석에 이렇게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데 다들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니 마음이 그렇구나, 하지만 또 우리는 가족이니까.. 그러니까 나는... 응. 이번에 마을에서 부녀회장에서 떨어졌다.

웃음을 띄우시며 "나는 안 하기로 했어. 일 년을 하니 내가 10년을 늙어. 그래서 난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살기로 했어. 감투 그거, 하는 거 아니다 싶어서 안 하기고 했고 이 고질병 류머티즘이나 고치련다."


그렇게 시간은 훌쩍 3시간이 지났고 다들 "이렇게 보니 전국 이야기자랑이네요"라고 말이 나왔고 어떻게 올해를 넘겨 가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각자 힘들 때 그때는 이야기를 못하고 지금에서야 이야기를 함은 시간이 약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할머니 말씀처럼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위로도 받고 위안을 얻어서일까 싶어서 괜히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고기를 굽겠다고 장작을 만드시는 삼촌을 보면서 불멍을 하는데 추석임에도 더워서 나는 "아니 그냥 고기는 패스가 안될까?"라고 말했다가 할머니는 "이 고기 먹으려고 할머니가 얼마나 고생한 줄 알아?"라고 음성을 올리셔서 "알지"라고 웃으며 넘겼다.

그렇게 불멍을 하면서 또 언제 더웠나 싶어서 고기를 넘기는데 나는 사는데 별것 없다는 우리 할머니 말씀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서 올해도 벌써 많아야 4개월이다,라는 생각에 시간이 이렇게 덧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같은 경우는 올해 초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하는 것마다 폭망 했다. 그래서 마이너스 손이었고 주위에 본의 아니게 피해를 줬고 하반기를 넘기면서 그나마 이제는 자리를 잡아서 멘털도 어지럽지 않다. 할머니는 내게 물으셨다. "넌 무슨 일 없고, 그리고 결혼은 진짜 안 해?"라고 물으셨다.

난 "할머니 결혼이 내가 하고 싶어서 했으면... 음 안 됐다. 하고 싶었던 적이 없었어.. 하하하"

할머니는 고개를 저으시면서  "누구를 닮은 거야" 하시며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오시겠다고 가셨다.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다들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사연 없는 사람 없고 아픔 없는 사람 없다, 명언이었다. 사람은 힘들면 '왜 나만 힘들지'라고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가족이라 이야기를 털어놓으니 각자 살아내느라 힘들었네 라는 생각이 들어서 눈물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산다는 게 그래 , 눈물과 눈물이 만나서 더 힘내라고 그래서 그 눈물의 진가를 알라고 내게 말해주는 그런 추석이었다.

그리고 얄미운 건 아니 쉬는 날은 왜 이리 빨리 가는지, 일 할 때는 안 가는 시간은 참 상대적이다.

그래 이제 하반기다. 열심히 살자.


올해 추석, 따뜻했다. 그래 사람 사는데 쉬운 건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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