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하면 마냥 좋을 것 같지만 생각해 보니 희로애락이 있다. 어느 계절이나 희로애락이 있지만 가을을 생각하니 울컥한다. 올해는 유독 여름이 길게 느껴졌다. 추석임에도 불구하고 땀을 흘려가며 전을 구웠고 찬바람이 불까 싶었지만 새벽에도 더웠다. 여름은 여름, 정말 끈질겼다. 난 말끝마다 "할머니 이러다 동남아 되겠어"라고 했고 할머니는 "내 평생 이렇게 더운 해는 처음이다" 하시며 할머니도 말끝을 흐리셨다.
자 그럼 적어보자.
1. 희
고3 시절이다. 고3이면 바쁘고 힘들 때 아니야? 할 수 있다. 물론이다. 나라고 뭐 힘들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우리 학교는 고3 때 졸업여행을 갔다. 2박 3일로 처음에는 신청자를 받아서 절반을 넘기지 못하면 못 간다고 선생님께서 걱정을 섞어서 말씀하셨다. 왜냐면 경비도 경비지만 수능을 앞둔 9월이었기에 애들은 "뭐야 수능인데?"라는 표현을 많이 했었기 때문에 설문지를 통해서 결과 보고 결정이 났었다. 당연히 난 간다에 체크를 했고 내 생각에는 2박 3일 논다고 뭐 수능점수 절반 되는 것도 아니고 갑갑한 학교, 하루는 좀 놀아도 되겠지 하고 가볍게 체크를 했다. 결과는 3분 2의 찬성으로 설악산 유스호텔을 갔다.
우리는 버스에서 노래도 부르고 김밥도 먹고 정말 재미있게 즐겼다. 문제는 설악산을 올라가는 게 난관이었는데 선생님께서 "산에 왔으면 올라야지" 하시며 맨 선봉장으로 앞을 이끄셨고 우리는 말없이 올라가는데 끝이 보이지 않아서 "야 이러다 죽겠다" 하면서 결국은 고지에 올라서 함성을 질렀다.
그리고 각자 포즈 취해서 카메라에 사진을 담았다. 정말 귀한 추억이다.
우리는 각자 사진을 받아서 일주일은 우려먹었다.
2. 로
유목으로 교육하는 우리 집은 내가 과를 정해서 마지막에 원서를 넣을 때 엄마는 내심 국어교육을 가길 원하셨다. 국어국문으로는 먹고살기 힘들다고 여러 번 말씀을 하셨지만 중2 때 내 결심을 돌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따지면 누가 국문가를 가?"라고 앙칼지게 말했고 엄마는 "교육과를 가서 네가 열심히 해서 더 좋은 문학을 하면 되는 거지"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난 마지막에 "엄마 평소에 유목으로 우리를 방치하다가 마지막에 이러면 반칙이야"라고 못을 박는 이야기로 대화를 끊었다. 이후로는 더 이상 말씀을 하시지 않으셨다. 난 끝내 국어국문과를 썼고 엄마는 그 이후로 정말 그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내가 입학을 하면서 더 많은 책을 사주셨다, 내 편이 되어주셔서 난 든든했다. 훗날 물었다. 엄마는 " 난 네가 잘할 거라 믿는다"라는 말씀으로 눈물을 보이셨다.
3. 애
첫사랑과 가을에 데이트를 시작했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그때가 떠오른다. 벌써 십 년도 넘은 이야기이다. 다 기억은 안 나지만 중고서점 중 유명한 곳에서 각자 관심분야 책 몇 권을 사고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동네를 몇 바퀴 돌다가 들어간 분식집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라면을 먹었다. 사실 분식집 라면은 그 친구와 처음 먹은 경험이다. 라면을 먹으려고 먹은 건 아니고 그 집에서 가장 유명한 게 라면이라고 추천을 해줘서 먹었는데 사실 내 입맛에는 짜서 먹기에 불편했지만 그래도 추천은 추천이니 내색은 하지 않았고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건 예술의 전당에서 미술그림을 관람하러 갔었는데 그곳에서 서양미술 100년이라는 타이틀로 명작을 구경하는데 미술책에나 보던 그림을 직접 보면서 서로 신기해하며 즐겼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다 지나간 이야기, 그래서 가을 하면 그때가 기억에 나서 난 슬프다.
사람들은 그때가 언제인데 아직도 기억을 하냐고 묻는데 강렬한 기억이라서 어떤 사람은 그럼 좋은 기억이라서 좋은 거 아니야?라고 할 수 있는데 나에게는 이제 기억이라서 슬프다. 하지만 이런 슬픔을 딛고 그냥 묵묵하게 있을 뿐이다.
4. 락
"몽접아 나오렴" 아빠다.
너무 늦은 시간, 거의 밤 11시였다. 난 눈을 뜨지도 못하고 겨우 나왔다. 중3 때였다.
아빠는 큰 박스를 겨우 내려놓으셨다. 엄마는 "여보 이 밤에 뭐야" 하시며 거실로 나오셨다. 여동생도 "아빠 이 밤에..." 하면서 다 모였다.
난 "아빠 뭐야?"
아빠는 미소를 참을 수 없어서 껄껄 웃으시며 "몽접이가 아빠한테 늘 말하던 거"
난 "그런 거 없는데"
아빠는 "너 매일 갖고 싶다고 했었어. 그러니까 2주 전에도 그거 보면서 좋겠다, 나도 그러면 공부 더 열심히 하겠다"했잖아
나는 골똘히 생각해도 몰랐다.
엄마는 "그러지 말고 풀어요"
아빠는 꽁꽁 싸인 박스를 풀었다.
그때였다.
세상에, 그 당시에 유행하던 모 출판사에 한국문학사 열전 60권이었다.
난 소리를 지르며 "아빠!!!!' 하며 거실을 뛰었고 엄마는 "무슨 돈?" 하며 웃으셨고 여동생은 "아 뭐야" 했다.
사실 그 책은 정말 사고 싶었다. 하지만 전집인지라 당시 60만 원이었다. 우리 집에서 전집값을 사기에는 너무 비싸서 눈구경을 했는데 아빠가 사 오셨다. 난 너무 좋아서 "아빠 이거 진짜야?"라고 몇 번이나 물어봤고 아빠는 "응 진짜야 좋냐?"라고 물으셔서 "나 진짜 공부 열심히 열심히 할게" 하면서 그 박스를 안고서 울었다.
아빠는 "자 늦었으니 찬찬히 보도록" 하시며 그렇게 그날 저녁은 마무리가 되고 그다음 날 학교를 다녀와서 난 두꺼운 책을 정말 모셔서 봤다.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서 책을 봤고 그걸 흐뭇하게 보신 아빠는 "뭐 담뱃값 술값 아끼면 저렇게 기뻐하는걸" 하시며 미소를 보이셨고 나는 그 기쁜 마음을 고등학교 때까지 가져가서 후회 없이 책을 읽었다. 전집은 집에 이미 많았다. 세로로 된 책들이 많았고 유명한 책들은 많았지만 현대소설이 턱없이 부족해서 구입을 하고 싶었는데 아빠가 사주셔서 그해 가을은 정말 좋았다. 옆에서 엄마가 만들어주시는 김치전을 먹으며 나는 룰루랄라, 그 좋아하던 공기놀이도 접고서 책에 푹 빠져 집순이로 살면서 가을이 되면 그때가 생각난다.
가을은 독서에 계절이라고 하지만 난 늘 책을 읽는다. 일주일에 3권은 읽으려고 노력을 하는 편이다. 현대인들은 바빠서 그런지 독서를 하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난 의식적으로라도 읽으려고 하는 편이다. 글을 쓰려면 많이 읽고 봐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대학교 때는 동화책을 다시 읽은 적이 있다. 다시 보니 어릴 때와 또 다른 감정을 읽을 수 있어서 매우 좋았던 경험이 있다. 책이란 요물이다.
틈으로 본 가을의 희로애락 이렇게 정리를 간단히 해보니 참 사람 마음 복잡하다.
글을 쓰면서 그때를 떠올리니 복잡해지는 마음에 글을 마무리하며 짧은 가을을 느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