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를 주장해도 이미 늦었다.
필요 없다 생각해 물건을 버렸고 어떤 사람이 그걸 주웠는데 알고 보니 높은 가치를 가졌다면 여러분은 해당 물건 소유를 주장하는 게 정당하다고 보는가?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신데렐라에 해당 질문을 던지는 장면이 나왔기 때문이다. 오늘은 신데렐라를 통해 버려진 물건 소유는 누구에게 있는지 설명하겠다.
새와 쥐는 신데렐라를 위해 의붓언니가 버린 옷과 장신구로 예쁜 드레스를 만든다. 평소 하찮게 여기던 물건도 누가 사용하고 변화를 주냐에 따라 배 아플 정도로 아름다운 존재로 변한다.
의붓언니는 필요 없고 촌스럽다고 여긴 장신구를 신데렐라가 사용하자 아름다운 모습에 화나 자기 거라며 내놓으라고 한다. 해당 모습은 평소 있던 게 다른 사람 손에 들어가자 화내는 빼앗기기 싫은 일명 손실 회피 본능을 닳았다. 자신이 가진 물건은 불필요해도 다른 사람 주기는 싫고, 자신이 구매했을 때보다 더 비싸게, 정가랑 비슷하게 판매하고 싶은 심리가 이런 현상이다.
의도해서 버린 물건 소유 주장을 전 주인이 다시 하는 게 가능한가? 해당 질문은 철학과 법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우선 타인이 가진 재물 즉 물건과 문서 등을 훔치면 절도죄, 부수거나 숨긴 경우 재물손괴죄, 기물파손죄가 된다. 그럼 해당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지 봐야 한다.
신데렐라 측
신데렐라는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드레스가 있다. 해당 드레스를 쥐와 새가 의붓언니가 버린 장신구를 모아 신데렐라 몰래 무도회에 가기 좋은 화려한 드레스로 꾸몄다. 버린 물건이더라도 주인 마음대로 물건을 변형시킨 행위다.
의붓언니 측
신데렐라가 자신이 버린 장신구를 마음대로 사용했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사용할 때보다 아름답자 시기와 질투, 분노를 느낀다. 갑자기 물건 소유를 재 주장하며 신데렐라 어머니가 물려준 드레스까지 찢어버린다.
두 상황을 봤으니 정해보자. 버린 물건을 허락 없이 다시 활용해 드레스로 만든 신데렐라와 물건 소유를 재 주장하며 신데렐라 드레스까지 전부 찢어버린 의붓언니 중 누가 책임이 더 큰가?
해당 잘못은 신데렐라 잘못이라 보기 힘들다. 이유는 간단하다. 장신구를 주워서 재디자인 한건 신데렐라가 하지 않았고 의도하거나 명령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신데렐라를 따르는 동물이 그녀를 돕기 위해 자발 해서 나섰다. 의붓언니가 물건 소유를 주장하고 자기 물건을 훔쳤다고 항의하는 건 가능해도 신데렐라에게 절도죄, 재물손괴죄를 넣을 이유는 없다. 쥐와 새를 재판에 넘기지도 못한다.
반대로 의붓언니는 다르다. 둘은 확실하게 재물손괴죄, 기물파손죄에 해당한다. 자신이 버린 물건이면서 돌려달라 하는 모습은 정당 하더라도 정말 자기 물건을 돌려받는 게 목적이면 드레스에 꾸며진 장신구만 떼어내면 된다. 하지만 둘은 신데렐라 드레스를 갈기갈기 찢었다.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일부러 타인 재산을 파괴한 행위며 사과나 반성하는 태도도 없다.
지금까지는 둘 태도에 따른 법적 책임을 설명했다. 이제부터는 물건을 활용하고 쓸모에 중점을 둬 설명하겠다. 누가 물건 소유를 주장하고 사용하는데 적합한지 신데렐라와 의붓언니 측으로 나누어 설명하겠다.
신데렐라 측
버려진 물건을 다시 재사용한다. 자신이 가진 아름다운 외모를 더한 덕분에 버려지고 방바닥, 장롱에 굴러다니고 썩혀있던 물건이 빛을 받으며 기존 장신구로써 목적과 가치가 되살아나고 존재 이유가 탄생한다.
의붓언니 측
장신구로써 목적을 잊고 장신구가 자신과 안 어울린다고 버린다. 하지만 신데렐라가 입은 걸 보고 찢고 뜯어버려서 장신구는 목적을 잃고 두 번 다신 활용 될 기회도 없어진다.
우리는 장신구가 누구에게 가는 게 맞는지 생각해야 한다. 내팽개친 기존 주인인지, 멋대로 사용한 새로운 주인인지에 말이다. 만약 장신구라는 물건이 아닌 양육권을 주장하는 상황이면 생명을 더 잘 보살피고, 가꾸고, 서로 교감을 잘하고, 아이 인격을 존중하는 사람에게 양육권을 주는 게 정당하다. 물건도 똑같다. 물건으로서 가치를 알아보고 물건을 돋보이게 하며 물건 주인도 돋보이게 해주는 사람에게 소유를 인정해야 한다. 원래 주인이 있던 물건이라면 어떤 방식으로 사용해도 당연히 주인 소유다. 하지만 의붓언니는 물건 소유를 버리면서 포기했다.
버린 순간부터 물건은 주인에게 벗어난 존재다. 쓸모없다 판단해 소유를 포기했으니까. 누군가 주워 다시 활용한다면 물건 소유는 다시 줍고 활용하는 사람에게 있다. 물론 소유를 포기한다고 서약을 한 건 아니니 자기 거라 주장은 가능하다. 하지만 그게 신데렐라 재산까지 파괴해도 되는 면죄부가 되진 않는다. 버려진 폐건물을 방치하다가 다른 사람이 도색하고 청소해서 꾸며 놓으니 그제야 해당 건물은 시에서 관리하는 거니까 건드리지 말고 불법 침입이라고 우기는 모습과 같다. 버렸다가 누군가 다시 손대서 물건이 가치가 생겼으니 물건 소유를 주장한다면 억지다. 하지만 신데렐라에겐 이런 억지를 막을 힘이 없었다.
해당 개념은 고대 그리스부터 나온 철학 관점이며 지금까지도 법이나 과학으로 설명이 힘든 윤리 문제에 많이 나온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만든 '목적론'이다. 모든 물건은 그걸 잘 활용하고 이용하며 목적에 맞게 사용하는 사람에게 부여해야 정당하다는 개념이다. 예시로 바이올린이 있고 바이올리니스트와 바이올린 수집가 둘이 있고 누구에게 바이올린을 줘야 정의냐고 물으면 목적론은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줘야 정의라고 한다. 바이올린은 수집품이나 장식품 목적이 아닌 음률을 들려주는 악기로서 태어났으니까. 결국 태어난 목적과 능력에 기회를 주는 게 정당하며 해당 주장을 통해 장신구 소유는 신데렐라로 해야 한다.
물론 의붓언니도 물건 소유 주장은 가능하고 화내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해당 분노는 물건을 훔치고 개조한 동물에게 향했어야 정당하다. 의붓언니는 자신이 사용했을 때는 지겹고 촌스러워 보인 게 신데렐라가 입으니 아름다워 질투해 분노를 표출했고 그녀가 무도회에 못 가게 만드는데 목적을 두었다. 장신구는 신데렐라와 같다. 쓸모없고 애물단지 취급받지만 누가 사용하는지에 따라 아름다움을 뽐내며 빛을 발산한다.
장신구는 신데렐라를 표현하는 물건이다. 의붓언니가 안 예쁘다고 버린 걸 신데렐라가 사용하니 고급스러워지니까. 새엄마와 의붓언니가 하찮게 여기고 잡일이나 시키는 신데렐라가 왕자와 결혼해 차기 왕비가 된 모습처럼 말이다. 모든 존재는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와 누구 손을 거치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참고로 아리스토텔레스 목적론은 무조건 옳은 개념은 아니다. 누가 더 잘 활용하냐로 정의를 두면 공정성에 어긋난다. 예시로 아티스트 콘서트 티켓을 누구에게 주냐고 한다면 선착순이 정당하다. 하지만 목적론이 정의라 말하면 더 청각이 좋거나 음악 감각이 뛰어난 예약자에게 주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장신구로 돌아와도 장신구가 하나 밖에 안 남았는데 두 손님이 사겠다고 할 때 목적론에 의거하면 더 예쁘고 잘생겨서 장신구가 잘 어울리는 사람에게 주는 게 정의다.
이런 모습이 우리가 생각하는 정의는 아니다. 그러니 상황에 맞게 사용하는 개념 중 하나이며 진리는 아니다. 오늘 주제는 목적론을 사용하기 좋은 주제라 생각해 대입해서 가져왔다.
오늘은 신데렐라에 나온 장면을 활용해 버린 물건 소유는 누구에게 있는지 말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여러분은 누가 물건 소유를 주장해야 옳고 누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는가? 오늘 글이 생각을 많이 하게 해 주고 흥미로운 글이 되었기를 바라며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