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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덕 Oct 27. 2021

극한 이삿짐. 지금까지 이런 이사는 없었다

 


독일에서 보낸 이삿짐이
끓는 적도를 통과하고 3개월 만에 도착했다.

더운 여름에 포장해서 보낸 귀국 이삿짐이 한 계절이 바뀐 가을에 도착했다. 따뜻한 옷들과 이불 생각에  반가웠지만 현타가 왔다. 이삿짐 지옥에 빠졌다. 


이사업체에서는 코로나로 인한 인력 부족과 원활하지 않은  컨테이너 수급으로 배송기간도 길어지고, 해외 이사 비용도 많이 올랐다고 했었다. 예산을 초과하는 비용 때문에 한국에 도착한 짐들을 안으로 옮겨주기만 하는 상품으로 계약했었다.


다행히 업체분들은 티브이나 책장같이 큰 짐 박스는 풀어서 지정된 곳에 자리 잡아주었다. 나머지 박스들은 집안 여기저기에 테트리스처럼 쌓아 놓았다. 집안 공간이 부족해서 대문 밖에도 높이 쌓여 있는 이삿짐 박스에 뇌가 일시정지였다.


정신 차리고 '주방'이라써있는 박스부터 열었다. 이번엔 종이 지옥이다. 깨지기 쉬운 것들이라 그런지 벗겨도 벗겨도 종이의 끝이 안 보였다.

 "뭐가 있긴 있는 거야?"

라고 중얼거리다 보면 작은 컵 하나가 나왔다.


커피를 좋아하기 때문에 커피잔 욕심이 많다. 예쁜 잔들을 보면 비합리적인 이유라도 붙여서 구입을 정당화했다. 사랑스러웠던 그 컵들의 존재가 이렇게 부담스럽다니.


옷 박스에서는 몇 년 동안 입지도 않았던 옷들이 나왔다. 70,80프로 세일이라는 말에 정신줄 놓고 구입한 브랜드 옷들이다. 고이 모셔 두기만 했던 옷들은 아름다운 가게로, 일부는 의류수거함으로,  그리고 옷장으로 들어갈 옷들을 분류했다.


박스를 하나씩 풀 때마다 지금은 쓰지도 않는 생활용품과 가전제품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나왔다. 이 많은 물건들 없이 3개월을 큰 불편 없이 살았었다. 필요치 않은 것들을 너무 많이 쥐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건들을 상태에 따라 나눔으로 또는 재활용 쓰레기로 분류하면서 박스들을 비웠다.


내 머릿속에도 걱정과 잡념 등을 담아놓은 박스들이
테트리스처럼 각 맞춰 쌓여 있다.

불필요한 것들로 가득  있었던 이삿짐 박스들처럼 내 머릿속에도 그런 박스들이 메가톤급으로 쌓여있다. 재활용조차도 안 되는 불안, 걱정 그리고  잡념 등의 카테고리 박스들이다. 속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가 불쑥 나오는 다양한 걱정들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맥락도 없이 온갖 장르를 넘나들며 찌질하게 전개된다. 온 세상 불행이 다 내꺼인 듯한 결말은 막장드라마 저리 가라다. 


하지만 걱정, 안, 잡념이 합세한 대환장 콜라보의 이 드라마들이 현실에서 똑같이 전개적은 없었다. 밤새 쓴 시나리오가 무색할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게 그 걱정은 별거 아닌 것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들이 보기엔 '왜 그게 걱정거리일까?' 하는 걱정도 나에게는 크게 와닿는 것이 있다. 걱정은 지극히 주관적이라 크고 작은 걱정 같은 건 없다. 그냥 내 걱정이 제일 각하고 크게 느껴지는 거다. 그래서 누구나 걱정 드라마를 쓰면서 사는 것이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적당한 선에서 종영시켜버리면 된다. 다만 너무 빨리 커트해버리면 곤란하다. 적당한 불안과 걱정은 여러 형태의 위험으로부터 나와 내 주위를 지켜주기도 하는 안전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있는 용량 초과의 걱정 박스를 비워내고, 그 공간에 따뜻하고 좋은 생각들을 채워보기로 한다. 과한 걱정으로 지금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망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걱정이 걱정해서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걱정은 우리와 늘 공생하고 있다. 어차피 같이 살아갈 거면 걱정은 미니멀하게, 행복은 맥시멀하게 가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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