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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빵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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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덕 Dec 03. 2021

브레첼. 바디랭귀지로 빵 사는 한국 할매 클라쓰


독일어 Brezel 브레첼 발음 때문에
브레첼을 못 사고 있었다.
"브 rㄹ어쩰?" "브리흐흐흑쩰?"


브레첼은 하트 모양의 독일식 빵이다. 밀가루, 소금, 설탕, 이스트 등 기본 재료만으로 만든다. 그래서 아주 담백한 맛이다. 독일 국민빵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빵가게뿐만 아니라 슈퍼에서도 손쉽게 살 수 있다. 브레첼은 나의 최애 독일빵이다. 간단한 식사로도 거뜬하다. 특히 맥주와 같이 먹으면 내입엔 딱이다.


오랜만에 브레첼을 구웠다.

브레첼의 발음이 나에겐 너무 어렵다. 첫 번째 독일 살이가 시작됐던, 그 해에 일어난 에피소드 때문이었다.


독일 딸 집에 놀러 오신 친정엄마는 나처럼 브레첼과 맥주를 즐기셨다. 담백하면서 한 번씩 씹히는 짭조름한 소금의 맛과 시원한 맥주의 궁합이 제법 괜찮다고 하시면서.


엄마도 나도 유럽은 처음이라 여기저기 여행다녔다. 그날은 화장실도 갈 겸 고속도로 휴게소에 잠시 들렀다. 엄마는 벽에 크게 붙어있는 브레첼 그림을 보시더니 한 개 사라고 하셨다. 독일살이가 막 시작된 시기였지만, 브레첼을 자주 사 먹었던 터라 자신 있게 말했다.


"Eine Brezel, bitte."(브레첼 한 개 주세요.)

빵가게 직원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Wie bitte?" (다시 한번 말해주시겠어요?)라고 했다. 

'우리 동네에서는 알아듣던데, 내 발음이 너무 정직했나?'라고 생각하면서 r발음을 넣어서 해봤다.

"ㄹ(r)얼첼"  

그 직원은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Wie bitte?"를 반복했다.

독일어는 가래 끓는 듯한 '흐' 발음이 많다는 생각이 번득 스쳤다.

"브레흐첼?" "브흐ㅎ리첼?" "브리흐흐흑쩰?"

내가 낼 수 있는 온갖 발음을 다 시도해봤지만 알아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정말 독일어에 무지했었다.


마침 화장실 갔던 아들이 돌아다. 아들에게 부탁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는 발음 때문에 못 사고 있던 브레첼! 아들은 너무 쉽게 샀다.


"아들, 엄마 브레첼 발음이 그렇게 구려?"

". 이상해요. 못 알아듣겠어."

역시 팩트만 정확히 이야기하는, 공감력이 1도 없는 미운 아들 끼다.

아들의 브레첼 발음을 열심히 따라 했지만 이상하다는 말만 계속 들었다. 누구나 잘  안 되는 외국어 발음 하나씩은 있는 거 아닌가? 나에겐 브레첼이 그렇다.


헉! 엄마는 혼자서 브레첼을 어떻게 사신 거지?

며칠 후, 엄마와 프랑크푸르트 시내에 있는 백화점에 갔다. 친구분들에게 선물할 독일 쌍둥이  사고 싶어하셨기 때문이다. 선물을 사고, 백화점 지하 있는 슈퍼에서 같이 장을 보고 있었다. 엄마가 쓰윽 나가셨다. 불안한 마음에 얼른 계산을 하고 나왔다. 엄마는 빵 봉지를 흔들면서 내쪽으로 걸어오셨다. 슈퍼 옆에 있는 빵가게에서 브레첼을 사셨단다. 집에 가서 맥주랑 먹자고 해맑게 웃으시면서.


독일어도 모르시는데 어떻게 사셨냐고 물었다.

한국말로 하셨단다. 

"보소, 이거 3개 주이소."라고. 

여기서 감탄할 만한 엄마의 스킬이 나온다. 이거라고 말씀하시면서 브레첼을 가리켰고, 3개라고 말씀하시면서 손가락 3개를 펴셨단다. 계산은 어떻게 하셨을까? 칼을 사고 거스름으로 받은 동전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역시 한국어로 "계산하이소."라고 하셨단다. 빵을 파는 총각은 동전 몇 개를 집더니 뭐라고 "샬라 샬라" 하면서 웃었단다.

계산까지 한국어로 깔끔하게 끝내신 기술이 놀라웠다.

 


훌라후프, 너마저? 끄응.

브레첼을 혼자서 거뜬하게 사신 엄마는 독일 와서 뱃살이 찌셨다면서 훌라후프를 사자고 하셨다. 바로 근처에 있는 스포츠 용품 파는 곳으로 갔다. 매장 직원에게 훌라후프가 어디 있는지 물었다. 어리둥절해하는 직원을 보면서 '이것은 브레첼 2탄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어가 서툴렀지만, 아는 독일어를 다 동원하고 영어까지 끌어다가 열심히 설명했다. 하지만 그 직원은 내가 무엇을 찾는 건지 모르겠다고만 말했다. 이때 엄마의 스킬이 등장했다.


환한 미소와 함께 엄마는 한국어로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이게.. 동그랗게 생긴 거고.. 허리에 놓고 요래 요래 돌리는 긴데."

말과 함께 허리를 돌리면서 훌라후프 하는 모습을 흉내 내셨다. 직원은 활짝 웃으며 알겠다는 표정으로 훌라후프를 가지고 왔다. 엄마의 바디랭귀지가  한 번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엄마의 한국어와 바디랭귀지로 산 브레첼과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물론 뱃살 걱정에 훌라후프까지 했다. 완벽한 하루였다.


독일에 살면서 서툰 언어와 발음 때문에 독일인들과의 소통이 어려울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당황하지 않았, 당당하게 엄마의 비법을 사용했다. 환한 미소와 바디랭귀지의 스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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