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살의 다짐과 쉰여섯의 거울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화장하는 언니를 보면서 혼자 다짐했다.
"난 절대로 화장하지 말아야지."
그러한 다짐을 한 지 4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외출할 때마다 화장을 한다. 스무 살에 처음 파운데이션을 바른 이후, 56세가 된 지금까지 화장은 내 일상의 일부가 되어있다.
초등학교 6학년 , 우리 집은 시장통 2층이었다. 1층에서는 엄마가 옷가게를 하셨고 2층은 우리 가족이 살림을 하는 집구조였다. 엄마는 일주일에 두세 번 새벽마다 도매시장을 가 옷을 사 오셨다. 손님들이 많이 찾을 거라고 예상하는 옷들을 구매해서 약간의 이익을 붙여 소매로 파셨다. 엄마의 가게는 소위 말하는 옷가게 골목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골목에는 15집 정도의 옷가게가 있었는데 그 가게들의 옷 가운데 겹치는 옷이 없다는 것이 희한했다. 한가한 오후에는 같은 골목에서 장사를 하는 분들이 앞 집, 옆 집, 서로서로 모여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 한가한 시간을 보내곤 하던 시절이었다.
엄마의 옷가게 바로 앞집에는 화장품 가게가 있었다. 요즘처럼 한 브랜드만 파는 구조가 아니라 여러 여러 회사의 화장품을 함께 진열해 놓던 곳이었다. 그 가게는 장사가 잘 되었다. 옷을 산 손님이 새 옷을 사면, 그에 맞는 화장품도 사 볼까?라며 그 가게로 몰려가곤 했다. 어린 나에게 색색의 화장품이 진열되어 있던 그 가게는 호기심의 대상이자 신세계였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가 사주는 과자를 먹으면서 화장품 가게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가게 유리에는 당시 인기 있었던 아름다운 여자 연예인들의 브로마이드가 걸려 있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그 사진들을 보면서 감히 따라갈 수 없었던 그녀들의 아름다운 공주같은 얼굴을 부러움으로 쳐다보곤 했다.
그 가게는 이쁜 언니가 사장이었다. 당시 유행이었는지 머리를 풍성하게 웨이브를 준 헤어스타일과 화장을 한 뽀얀 얼굴은 나의 마음속에 미의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20대였던 것 같다. 언니는 아침에 가게 문을 열면 간단한 청소를 하자마자 얼굴에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럴때면 최면에 걸린 듯, 나도 모르게 언니의 가게로 발을 들여 놓고 있었다. 가게 문의 경계선을 넘어 언니의 화장하는 얼굴을 보면 언니는 씽긋 웃어 주었다.
"너도 한 번 발라볼래?"
나는 쑥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몸을 베베 꼬면서 언니에게 물었다.
" 언니 화장은 왜 하는 거예요?"
언니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이뻐지려고 하는 거지 "
"언니는 지금도 예쁜 것 같아요."
그럼 언니는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ㅎㅎ 얘 봐라~~ 화장하면 더 예뻐"
살랑살랑 간드러지는 듯한 언니의 목소리와 이쁜 얼굴는 어린 아이의 마음 속에 워너비가 되어 있었다.
실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가게 포스터에 있는 연예인이 화장을 한 얼굴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는 생각은 못하고, 언니가 화장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그런 아이였던 것이다. 어린 내 눈에는 화장 한 얼굴보다 화장하지 않은 순수한 언니의 얼굴이 더 우아하고 빛나 보였다.
'난 크면 화장하지 말아야지."
언니는 나의 이 말을 듣고 큰소리로 웃으며 답했다.
'희정아 언니도 너 나이 때에는 그렇게 생각했었어. 너도 내 나이 돼봐. 화장하게 될걸."
지금 내 나이는 56세다. 지금 나는 화장을 열심히 하고 있다.
젊었을 때에는 회사를 다니면서 간단하게 피부톤을 정리하는 정도만 했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나이보다 젊게 보이고 싶은 마음에, 거울에 보이는 세월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지우고 싶은 마음에. 그 마음들이 피부에 파운데이션을 바르게 하고, 눈썹을 그리고 입술을 연한 빨간색으로 칠하게 한다. 화장을 하고 거울앞에 서면 칙칙한 얼굴의 나는 찾을 수 없고 밝고 환한 피부에 빨간 입술을 가진 여인을 본다. 그렇게 지금의 화장은 나의 마음을 돌보는 방법 중 하나가 된다.
문득 거울앞에서 언니가 한 말이 생각난다.
'너도 나이 먹어봐. 화장하게 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