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죽어서 무엇이 되며 어디로 갈까?
연작소설이라는 것이 표지에 적혀있었으나 아무 생각 없이 단편소설이겠거니 하고 읽어나갔다. 세 번째 작품을 펼치자마자 어? 하는 의문과 함께 깨달았다. 연결된 이야기라는 것을.
정세랑 작가님의 <피프티 피플>처럼.. 앞에 조연으로 나왔던 인물(혹은 고양이!)이 다음 작품의 주인공이 된다. 그보단 더 빨리 파악했다... 거긴 인물관계도가 훨씬 복잡했기에..!
<브로콜리 펀치> 이후 이유리 작가님의 두 번째 책으로 읽게 되었는데 각각의 짧은 단편으로는 <브로콜리 펀치>가 더 좋았고, 한 권의 책으로 보자면 <좋은 곳에서 만나요>가 더 좋았다.
이토록 아름다운 곳이, 온 사위가 밝아지며 점점 빛 속으로 잠겨 들고 있는 이 곳이 세상의 끝이 아니라면 어딜까. 그렇다면 여기서 이대로 끝나도 좋다, 라고 생각했다.
고양이에게는 아홉 번의 생이 주어진다. 전생을 기억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나는 내가 전생에 사랑했던 그를 찾아 기나긴 여정을 떠난다.
나는 그를 찾아가보려 한다.
'사람은 죽어서 무엇이 되며 어디로 갈까.'라는 작가의 질문이 만들어낸 총 여섯 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무겁거나 슬프지는 않다. 각각의 작품에서는 주인공이 죽고 나서 귀신이라 불러야 할지, 영혼이라 불러야 할지 모를 상태로 어딘가를 맴돌다가 무언가가 채워지는 순간 사라진다.
아버지의 납골당에 가려 생전 타지도 않던 택시를 탔다가 죽은 중학교 2학년 여학생, 그 여학생이 탄 택시의 운전기사, 운전기사가 예전에 저지른 음주운전 사건으로 사망한 두 명의 여자...
그들의 사연은 생각보다 아름답지 않았다. 특히 택시기사가 주인공이었던 <심야의 질주> 편은 주인공의 음주운전 사고를 알게 된 이후로 불편한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그의 삶에 공감할 수가 없었다.
첫 번째 이야기인 <오리배>에서는 한 가족이 등장한다.
읽는 내내 이기적인 아빠의 모습에 화가 났다. 그리고 허무하게 죽어버린 주인공이 너무 안타까웠다. 엄마, 아빠, 나로 이루어진 세 가족에서 엄마, 나, 그 아이로 바뀐 순간 셋 모두가 불행할 거라는 내 생각과는 달리 오히려 서로를 통해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참 다행이었다.
이런 모습도 해피엔딩이라고 볼 수 있을까?
<세상의 끝> 두 번째 이야기인 <심야의 질주>에서 택시기사의 음주운전 피해자였던 여성 두 명. 죽고 싶었던 혜수와, 사실은 잘 살아보고 싶었던 지우의 이야기다.
'모든 것이 좋아질 듯 좋아지지 않았고 다만 혜수가 좋았던 날들.' 152p
'난 누군가한테 좋아함을 당해본 적이 없거든. 나는 네가 날 좋아하는 것처럼 널 좋아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네가 날 좋아하는 게 나쁜 건 아닌 것 같아.' (중략) '적어도 혜수는 내게 자기를 좋아하도록 허락해주었다. 그걸 이상하게도 나쁘게도 여기지 않고서.' 148-149p
항상 죽고 싶어 하는 혜수가, 어딘가 나사가 하나 빠진 것 같이 이상했던 혜수가 지우에게는 위안이 되었고 사랑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랬다.
<아홉 번의 생>에서는 주인공이 고양이이다. 혜수와 지우가 종종 살펴주던 그 고양이이다. 고양이는 자신의 전생을 기억하며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그러다 어떤 선인장을 만나 사랑하게 된다.
'나는 그 애의 가시에 찔릴까 두려워하기보다는 내가 그 애의 가시를 다치게 할까 봐 걱정했다. 나는 또 그 애의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 뿌리와 단면을 보고 싶었고 사막의 모래와 태양이, 밤이면 그 애의 머리 위로 쏟아졌을 은하수가 궁금했다.'
(중략) '내가 품은 것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직후부터, 나는 내 것과 같은 것을 그 애에게 받고 싶었다. 아니, 받아야만 했다.' 176-177p
고양이는 마지막 아홉 번째 생이 될 때까지 그 선인장을 찾는 일에 모든 시간을 쏟는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랑을 무엇이라고 정의해버리는 순간, 사랑은 순식간에 작아지고 납작해진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가 해야 할 일은 사랑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저 수천만의 행운이 겹쳐 만들어낸 오늘을 최대한 즐기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뿐.'
(중략) '그저 바라는 것은, 내가 떠난 뒤에도 그 애가 좋은 곳에 있기를. 그뿐이었다.' 205p
나는 모든 것을 정의 내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특히 불확실한 무언가를, 명확한 답이 없는 문제에서 답을 찾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사랑'도 나에겐 그런 문제다. 무엇이 사랑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답이 없는 문제란 걸 알면서도 답을 찾고 싶어 했다. 그래서인지 이 문장이 더 좋았다.
<영원의 소녀>에서는 '영원이라는 게 있을까?'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진다.
'세상에 단 하나 영원한 것이 있다면 영원이 없다는 사실 그 자체 뿐이라고.' 224p
'두고 봐라, 나아질거야. 영원히 괴롭진 않아. 뭐든지, 즐거움도 괴로움도 영원하진 않아. 그러니까 얼마나 다행이냐.' 253p
영원이 없다는 것은 슬프고 두려운 것임과 동시에 참 다행이기도 하다. 영원한 게 있을까? 영원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토록 영원한 것을 바라는 게 아닐까. 영원한 사랑이 있을까? 영원한 슬픔은 있을까?
<이 세계의 개발자>는 마지막 작품이어서인지 이야기를 정리하는 느낌이다. 게임이 있다면 그 게임을 개발한 개발자가 있듯이, 이 세계의 개발자는 곧 신이다. 신이 나타난다! (여기서는 주인공이 앞의 작품에 나왔던 인물인지 모르겠다. 내가 못 찾은 건가..?)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가고 싶던 곳에 가고, 하고 싶은 말을 끝내 하고. 아무튼 원하는 건 거의 비슷한데, 거기까지 다다르는 과정이 또 얼마나 다양한지 몰라. 결코 길지 않은 삶을 살면서 어쩜 그렇게들 끈질기게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지. 맘대로 안 되는데도 어떻게든 저들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고 애쓰는게 굉장하기도 하고." 289p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문장이면서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는 문장이다.
'세상이 너무나 다채롭고 복잡하고 아름다워서, 한 번 머물다 가기에는 아무래도 아까운 곳이라서. 그런 의문은 이 세계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 세계를 이루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졌다.' <작가의 말>
결국 이 아름다운 세상 속에서 사랑하며 살자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겠다. 정말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아름다운 세상이 맞는가 하는 의문은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 속에서 내가 살아있기에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이 하나쯤은 있었다.
그냥, 사랑하며 살아야겠다.
내가 죽으면 어디서 맴돌게 될까?
세상에 영원한 것이 있을까?
나에게 아홉 번의 생이 주어진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