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으로 효도하지 않기

선물은 마음이다

by 페이퍼


그동안은 가족이나 부모님의 생신, 명절 등에 현금 선물을 이레 해왔었다

그러나 그 패턴이 고루하고 연례행사처럼 되어버려 몇 해 전부터 조금 생각이 바뀌었고 이제는 그런 날 현금 선물은 하지 않는다

대신 현금은, 어떠한 날도 아니지만 필요할 때 드린다


그런 때가 바로 가족들이 여행을 갈 때이다

큰돈은 아니지만 여행경비로 사용하시라는 의미이다

또 대화 중 사사로운 일로 현금이 필요해 보일 때

그럴 때는 얼마 안 된다며 용돈처럼 보내드리는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일 년치 가족 생일, 선물, 효도 비용을 계산해 놓으라고

생일, 설날, 추석, 제사 등을 정해진 비용만큼 계산해 놓으면 일 년치 가계부를 작성할 때 미리 대비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물론 예산은 어느 정도 범위를 지정해야만 하지만

그것이 꼭 현금일 필요는 없다


현금보다 기쁜 건 선물이다

하지만 선물은 까다롭고 번거롭다

대개는 그 과정이 귀찮아서 제일 간편하게 현금을 용돈으로 드리는 것일 테다


나는 이번 설을 맞아 부모님과 호캉스를 다녀왔다

지난번 출장 갔을 때 좋았던 곳이라 한번 모시고 가보고 싶었는데 마침 명절이 되어

선물 대신 여행으로 마음을 대신했다


부모님에게 드릴 용돈 대신 호캉스를 계획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함께 1박 2일을 보내는 시간에

즐거운 대화가 오갈 수 있는 좋은 시간을 만드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효도이고 선물이다


물론 비싸고 좋은 선물도 큰 기쁨이지만

가족들도 나 같은 월급쟁이 수준에서 드릴 수 있는 선물의 폭이 그리 넓지 않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큰 선물과 큰 기쁨 대신 작지만 분명한 행복과 선물을 전달한다


부모님께 드리는 선물 중 가장 좋아하셨던 선물은

바쁜 와중에도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었다

그중에서도 명절이나 생일보다 빼먹지 않고 함께 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집에서 하는 셀프 염색이다


이제는 무뎌진 손과 눈으로 셀프 염색을 하기 부담스러워서 내가 같이 도와드려야만 꼼꼼하게 염색이 잘된다고 하시는데

염색이 잘 된 머리를 확인하고 나면 그렇게 개운하다고 하시며 숙제를 하나 끝낸 기분이라고 하시니

나로서는 도와드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물론 주말 오전에 늦게까지 자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고 일어나서 서둘러 가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만족해하고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면 그 어떤 선물을 드렸을 때 보다도 뿌듯하다

(루이비통 매장에서 백을 사드렸을 때보다도 더 좋아하시는 것 같다)

그래서 뭐가 됐든 행복하시기만 한다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머리 염색하는 날 만큼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고 있다


계란 한 판을 사서 구운 계란을 만들었으니 가져가라고 하는 것,

반찬을 줄 테니 토요일 아침을 집에 와서 먹고 가라는 것,

잘못 구입한 물건을 반품하는 방법을 모르니 대신해 달라고 하는 것 등등

마음과 시간을 내야만 할 수 있는 일들이야말로

서로에게 주는 작고 소소한 선물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마음의 주고받음이 오가다 보면

기념일을 거창하게 보내지 않아도 괜찮다

평소에 나눈 시간 속에서

현재 서로가 어떤 상태인지 충분히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설 연휴

현금 봉투 대신 함께 가는 호캉스로 선물을 대신하며

차 안에서, 카페에서 나누었던 얘기들,

밥을 먹으며 웃음이 터져 나와 웃었던 순간들,

잘 먹은 저녁에 탈이 나서 맘 졸였던 시간들 ,

좋은 추억이 되어 가슴 한편에 잘 보관해 두었다

모두 건강히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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