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있는 응어리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들뜬 연말.
깊고 진지한 이야기를 즐기는 우리 모임은 언제 만나도 반갑다. 안부와 근황을 이야기하며 마음 깊은 대화가 오간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왔다. 크면서 그 시기를 어떻게 각자만의 방식으로 해소했는지 또는 버텨냈는지에 대한 질문을 A가 먼저 했다.
“그때의 안 좋은 기억들을 어떻게 했어요?”
무슨 말이든 하고 싶어 “음, 나는 이렇게 했던 것 같아요….”하고 어떤 말이든 하고 싶어서 쥐어짜려고 시도를 했다가 횡설수설하고는 다시 정정했다. “사실 어린 시절 기억이 별로 없어요. 기억을 지워버리는 방식으로 회피했나 봐요.”라고 대답했다. 실제로 그 말이 맞았다. 그동안 어린 시절에 관해 이야기를 할 때면 부모님의 불화, 다툼, 싸움 같은 말로 대표해서 두루뭉술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다툼, 불화는 가장 통속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라 누가 그 단어를 언급한다고 해서 공감이 크게 되거나 감흥도 없긴 했을 것이다. 이랬었고 저랬었다고 할 만한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그 말을 끝내자마자 처음으로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 좋은 분위기에서 더 심각해지고 싶지 않아 이내 그 장면은 다시 넣어두고 시끌벅적 연말의 분위기로 다시 돌아갔다.
햇볕이 진노란색으로 내리쬐던 따스한 주말 오후였다. 식당을 하시던 부모님이 쉬는 날이었다. 집에서 뒹굴거리며 엄마가 해주는 맛있는 된장찌개와 방금 무친 나물들을 먹으며 햇볕만큼이나 따스하고 편안하게 쉬고 있었다.
신사동 방 한 칸, 바깥 외벽에 기둥을 덧대어 만든 임시 부엌이 있던 집. 안방과 부엌의 유일한 통로는 창문이었다. 창문의 높이가 있어서 사람이 왔다 갔다 할 순 없었고 부엌에서 만든 음식을 나르는 용도로만 활용했다. 그날도 부모님은 처음엔 조곤조곤 말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그러다가 크레셴도로 분위기가 격양되더니 급기야는 참고 참던 엄마의 입에서 “이 인간아 제발 좀 죽어”라는 말까지 나왔다. 지렁이가 죽기 전 마지막 발악을 하는 양 엄마도 그날만큼은 그동안 참았던 모든 힘을 쥐어짜는 듯 온몸을 이용해 길길이 날뛰며 흥분했다.
아빠는 그 말을 듣자마자 더 흥분해서 부엌으로 달려갔다. 엄마가 아침까지도 감자를 잘랐던 도구. 아빠는 그것을 꺼내 들었다. 아빠의 눈빛은 영혼 없이 또랑또랑 빛이 났다. 엄청난 일을 저지를 것 같은 사람의 눈빛이었다. 나는 그 눈빛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아빠는 부엌에서 안방 창문틀 위로 발하나를 올리고 금방이라도 안방으로 건너올 듯이 위태롭게 중간에 걸쳐있었다. 한 손으로는 흰색 러닝을 목까지 들어 올리며 “자 찔러봐! 죽여! 죽여봐!”라고 가슴을 내밀며 소리를 질렀다. 내일 신문에 우리 가족의 비극적인 기사가 실릴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안절부절못하고 울며불며 엄마의 치맛자락을 잡고 말렸다.
“엄마! 제발 가만히 좀 있어”손으로 엄마의 입을 막았다. 엄마의 어깨를 때리며 엄마에게 화를 쏟아 냈다. 엄마만 가만히 있으면 상황은 잠잠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린 자식들은 엄마에게만 들러붙어 가뜩이나 미칠 것 같은 엄마를 가만두질 않고 있었다. 다행히 최악의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한바탕 싸움이 일어나고 나면 적막 같은 고요함이 흘렀다. 모두 지치고 진이 빠져있었다. 씩씩거리며 각자만의 방식으로 진정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아빠는 밖으로 나가버렸고 엄마는 방에 모로 누워 끙끙 앓다가 잠이 들었다. 언니는 연필을 꼭 쥐고 다이어리에 휘갈기듯 감정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때 나는 뭘 했을까? 나는 누워서 생각하고 있었다.
이 싸움이 왜 일어났는지, 누구의 잘못인지, 나는 왜 이런 부모를 만났고, 왜 이런 집에서 태어났는지, 이런 지긋지긋한 상황을 언제 벗어날 수 있는지, 내 인생은 왜 이리 불행한 건지 등 머리로 부모님의 싸움을 되짚어보며 분석했다. 그러다가 이내 상상으로 이어지곤 했다.
나의 상상은 이런 것이었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검은색 세단을 탄 부잣집 사람의 차에 치인다. 큰일이 날뻔하지만, 다행히 심하게 다치지 않는다. 아이가 없던 부잣집 신사는 미안한 마음에 나에게 자신의 집으로 가지 않겠냐며 제안을 한다. 나는 그 집으로 순순히 따라가서 부유하고 평화로운 집에 입양이 된다.
또는 이런 상상도 했다.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구구절절 한 사연이 담긴 편지를 돈 많은 기업가에게 보낸다. 기업가는 불쌍한 나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기고 그에게 별것 아닌 돈 1억을 우리 집으로 보내준다. 우리 가족은 그 돈을 받고 평생 행복하게 산다.
그러다가 이내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끼고 현실을 직시했을까. 가슴 아픈 상황을 기억 저편으로 보내버렸던 것 같다. 그러다 누군가의 질문으로 시작해 이렇게 사진처럼 찍힌 찰나의 장면이 예고도 없이 툭 튀어나와버리고 말았다. 그 사진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유난히 화창하고 밝았던 그날의 날씨, 좁은 집의 쿰쿰한 냄새,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퉁퉁 부은 눈두덩이의 무거운 느낌까지도 생생하게 살아난다. 언젠가 또 다른 끔찍한 기억이 튀어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차분하려 애써본다. 기억을 꺼내는 일은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여도 참 버겁다. 목이 뻐근하다. 이렇게 글을 쓰면서 엄마의 치맛자락을 잡고 울던 어린아이가 되어 울고 있다.
‘그냥 글이야. 과거라고. 오버하지 마’라며 나를 다그친다.
아빠는 내가 울 때마다 말했었다.
“눈구멍이 썩었냐?”
어른이 되자 억울함이 목까지 차오르면 눈물부터 난다. 그리곤 할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눈물범벅된 얼굴과 턱 밑까지 꽉 찬 억울한 감정들이 버거워 결국 할 말은 하지 못했다. 상대방은 내 눈물부터 수습하거나 피하느라 정신없었고 정작 서로가 나눠야 할 대화는 뒤로 밀리기 일쑤였다. 눈물은 인간이 가진 감정 표현 중 하나이다. 운다는 것은 수치심이 아닌데 이미 몸에 밴 그것은 한 번에 지워내기 어려웠다.
천장 한번 보고 긴 숨을 내뱉는다.
눈을 감고 가만히 있어 본다.
그렇게 가만히 밀지도 당기지도 않고 둬보기로 한다.
나는 한참을 가만히 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