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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ycool Apr 12. 2024

나는 in 서울 4년제, 너는 그냥 in 서울

나의 연애

H와의 연애에서 가장 나다운 모습을 보았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막 제대한 순수하고 혈기왕성한 대한민국, 서울에 거주하는 청년이었다.     

나는 대한민국, 서울에서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직딩’이라는 호칭을 들으며 사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흠 일단 ㅇㅇㅇ브랜드를 입은 거 보니 패션에 대해선 무지한 것 같았고 차가 있거나 집이 잘 살지도 않는 듯했다. 그리고 고등학교만 졸업했다고 했다. 의외로 거들먹거리지 않고 차분하면서 겸손한 그의 태도가 나쁘진 않았다.     

철없지만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와 내 친구들 사이에서 우리는 스펙이라는 이름으로 남자친구의 사는 곳, 학벌, 차의 유무, 외모 따위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습성이 있었다.      

고등학교만 졸업한 남자와 연애를 해본 적은 없어서 솔직히 친구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가장 많이 신경이 쓰였다. 전체적으로 내 스펙과 그의 스펙을 양쪽으로 비교해놓고 보니 이 사람보다 내가 좀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치졸한 우월감 같은 마음으로 나는 그의 앞에서 당당하고 거침없는 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동시에 편안한 친밀감이 밀려왔다.   

  

“오늘 우리 도자기 만들러 가자”

“응, 그래”     

“스파게티 먹으러 가자”

“네가 먹고 싶으면 그렇게 하자”     

“지금 바닷가 갈래?”라고 뜬금없고 갑작스러운 질문에도 묵묵히 끄덕끄덕 해주었다.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들이 생각나면 다 해봐야 했고 그도 나의 장단에 잘 맞춰주었다.     

내가 이렇게 남자에게 편안하게 대하지 않는데? 이상하다.

생각보다 그에게 나의 개인적인 정보들을 오픈했다.     


나의 가난함과 그의 고졸 학력을 맞바꾸며 편안한 연애라는 자유로움을 얻은 것일까?

가난이라는 수치스러운 내 현실을 상쇄하기 위해서는 외모, 학벌, 재력 같은 것이 양쪽에 +-되어 최종적으로 등호가 되는 법칙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외모가 별로인데 돈이 많은 남자를 만나는 친구도 있었고 다른 건 몰라도 외모는 무조건 1순위였던 친구도 있었다. 알게 모르게 상대를 만날 때 +- 법칙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외모가 별로지만 돈이 많은 남자를 만나는 여자는 예뻤지만 똑똑하진 않았고 외모를 따지는 여자는 능력이 있었다.       

나보다 학벌은 높지 않지만, 재력이 월등히 나은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는데 장단 맞춰 줄 수 있는 여자가 필요한 듯했다. 내가 만난 사람은 치렁치렁 화려하게 돈이 있다고 티 내고 다니는 사람이었는데 명품 가죽 파우치를 겨드랑이에 끼고 외제 차를 타고 다니는 그 꼴은 비호감 1순위였다. 재력만으로는 안 되는 나의 까다로운 +-법칙이 분명 있었다.          

가난하지만 학벌이 높은 사람은 대체로 부잣집에서 사랑받으며 자란 여자를 선호하는 듯했다. 그에게도 가난한 어린 시절을 상쇄해 줄 학벌이라는 것이 있으니 힘들었던 과거, 가족들을 생각하며 보상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지레짐작으로 어려워했을 수도 있다.     

돈이 있거나 학벌이 높은 남자들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런 상대에게는 내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 적도 없었을 그뿐만 아니라 만나더라도 열등의식 때문에 오래 만날 수가 없었다. 시큰둥한 태도로 콧대가 너무 세 보이거나 아니면 알게 모르게 거리감을 가지고 대하다 보니 더 이상의 깊은 관계로 발전되질 않았다.     


무엇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을까?     

어려서부터 나는 당돌한 구석이 있었다. 시골 할머니 댁에서 식사를 할 때면 남자들은 나이 구분 없이 크고 네모난 상에서 식사하고 여자들은 증조할머니를 제외하고는 모두 작고 동그란 상에서 식사를 해야 했는데, 나는 기어코 남자들의 네모난 상에서 밥을 먹었다. 엄하기로 소문난 할아버지가 우리 앞에서 담배를 피우실 때도 “할아버지, 담배는 몸에 안 좋아요. 이제 담배 피우지 마세요.”라며 남은 담배를 두 손으로 꼭 잡고 반 토막으로 구부려 끊어버렸던 기억이 있다. 그때 할아버지를 포함한 주변 가족들의 얼음처럼 얼어붙었던 표정이 생생하다.      

남자들을 만나도 대체로 내가 하자는 대로 따라주는 남자들이 편했다. 한마디로 기가 센 여자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여자가 취약하다고 느끼는 가난함은 항상 나를 낮추고 초라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자기 주도 학습을 받은 사람도 아닌데 나는 참 자기 주도적이었다.

이런 성격의 나는 꿀릴 것 없는 사람을 만나야 내 마음대로 휘두르고 살아야 했으리라.     

내 방식대로 이끄는 만남과 연애만이 가능했다는 얘기다.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것을 함께 누리는 것이 아닌 내가 그것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 그게 돈이든 학벌이든 내가 쥐고 있어야 했다. 돈이 있는 남자가 어미 새라고 하면 어미 새가 가져다주는 먹이만 먹고사는 새끼 새는 될 수 없었다. 받아먹는 삶을 살아보려 애써보았지만 그런 관계는 나와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스스로 개척해서 찾아낸 먹잇감을 좋아했고 그 먹잇감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주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나는 어미 새였다.     


그런 연애에서 조심해야 하는 것은 내가 너무 이기적으로 되기 쉽다는 것이다. 편안함을 가장해서 상대를 은연중에 하대하거나 무시할 수 있다. ‘너 어디까지 버티나 보자’로 상대를 괴롭힐 수도 있고 자칫 사랑이라고 착각하지만 연민 같은 만남이 될 수도 있다.      

나는 결국 학벌과 재력의 끈은 놓지 못하면서 비교하고 따졌지만, 학벌과 재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상대를 만나도 그에게 만족하지도 못했다. H는 나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잡을 수 없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는 사람처럼 혼란스러운 연애를 했다. 그런 연애는 결국 성공하지 못한다.     


이제는 안다. 나는 주체적이고 주도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서 남편이 가져다주는 돈 말고 단돈 얼마라도 내가 버는 돈이 소중하다.


나는 어미 새로 살아도 좋다. 시간이 걸려 깨달았지만 그것이 나의 본질이라면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받아들이지 못했을 때는 이것도 불만 저것도 불만이었다. 

학벌 좋고 돈 많고 잘생긴 사람을 만났다면 나는 행복하게 살았을까? 지금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오! 감사합니다.”하고 넙죽 100번이고 절을 하겠다. (그저 상상일 뿐이니 남편에게는 양해를 구한다.) 지금은 나를 조금은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때의 나는 그렇지 못했다. 내가 나를 몰랐고 욕심만 부렸다.

      

울타리 안에 큰 아름드리나무에 둥지를 지었다. 자유롭게 쉬기도 하고 날고 싶으면 날아올라 먹이도 찾는다. 가끔 동료 새들도 초대해서 행복한 시간을 갖는다. 내 둥지에 편안함을 느끼는 남자 새도 만나 사랑도 나눈다. 어미 새는 그렇게 자신만의 날갯짓으로 더 높이 더 멀리 날아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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