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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ycool May 19. 2024

자유로운 예술가

예술가의 작품에 손대지 않기

"안녕하세요!"

교실 문을 열고 금요일다운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오늘도 초코빵님이 일찍 와서 나와 마주 보는 테이블 끝자리에 앉아 계셨다. 10시가 되어가자 복지관 담당자와 여고 봉사자 두 명이 함께 들어왔다.

"이제 3주간의 봉사자들 활동이 끝났습니다. 오늘이 마지막 날입니다."


동글동글 귀여운 외모의 여학생 한 명과 과감하게 2단으로 레이어드 커트를 한 보이시한 매력의 여학생이 쭈뼛하게 서 있었다.

긴장감을 풀어주고 싶어서인지 수강생 중 막내인 실버님이 말했다.


"어려서 좋겠다."


"실버님도 어리시잖아요~ 저는 어떡하라고요~"

나는 실버님의 의도를 알기에 대신 대답을 해주었다.

모두 깔깔 웃으며 서먹했던 분위기가 풀리기 시작했다.


실버님이 직장에 다녔으면 선배들에게 이쁨 받는 사회성 만렙 직장인이었을 거다.

얼마 전 7년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는 말을 듣고 내심 마음에 걸렸는데 오늘도 밝은 모습의 실버님을 보니 큰 언니 입장에서 기특하고 대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버님을 향해 활짝 웃었다.



"이번 시간에는 명암에 대해 알아볼 예정입니다.

명암은 왜 생길까요? 무엇에 의해 생기는 것인지 한번 맞춰볼까요?"


아이언님이 역시나 우등생답게 대답했다.


"빛이요."


"네, 맞습니다. 밝고 어두움이 있다는 것은 빛이 있다는 것이에요."


전자칠판에 오늘의 주제에 관련된 이미지를 띄워놓고 수업을 시작했다. 봉사 학생들은 장애인 수강생들 사이사이에 앉아 있었다.


정육면체를 선으로 그린 다음 빛이 오는 방향을 생각해서 가장 밝은 단계부터 어두운 단계까지 사각형 면에 채색을 하는 것이 1단계 목표였다.

2단계는 구를 표현하고 명암을 4단계로 넣어 경계 부분을 스머지(문지르기) 브러시 기능을 활용해서 자연스럽게 경계 진 부분을 그러데이션 해주는 것이다.

수강생 6명의 작업 과정을 전체적으로 살펴야 하는 나는 중간중간 진행 상황을 체크하고 도움이 필요한 분이 계신지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대부분 도움이 필요하면 목소리를 내거나 손을 들기 때문에 알아차리기가 쉽다.


테이블을 돌아가며 둘러보니 유달리 봉사 학생 옆자리에 앉아 있는 수강생들 작품의 완성도가 좋아 보였다. 아무래도 봉사자들이 직접 펜을 들어 삐뚤어진 선들을 봐주었지 싶었다.


나도 처음에는 비슷한 도움을 드린 적이 있었다.

오사카님이 원하는 색을 펜으로 콕 찍는 걸 어려워하시던 날이었다. 몇 번 반복을 해도 자꾸만 다른 쪽으로 향하는 펜이 야속할 정도였다.


나는 오사카님과 함께 펜을 잡고 고르려던 빨간색을 콕 찍었다. 그때 수강생의 손에서 강한 저항감 같은 것을 느껴 흠칫 놀랐었다. 내가 이렇게 도와주는 것이 불편하구나 싶어서 그 이후로는 조심했었다.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뇌성마비 장애인들은 신체를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손을 잡고 도와준들 가만히 자신의 손에 있는 힘을 빼고 강사의 지도에 맞춰 선을 그리거나 채색하는 것이 어렵겠다는 순간의 깨달음을 불현듯 느꼈었다.


그 후로는 수강생들이 끝까지 집중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고 기다려주는 것이 그들을 도와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뇌성마비 장애인들에게 시범은 보여줘도 펜을 함께 붙잡고 그려주는 일은 하지 않는다.

미완성이면 미완성인 데로 우리 수강생들에게는 스스로 했다는 성취감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수강생들의 삐뚤빼뚤한 선들이 좋다.

예술가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살고 싶지만 사회가 정해놓은 규칙 안에서 살고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정형화된 프레임 안에 맞춰보려 노력한다. 하지만 예술가의 본능이 틀 바깥으로 튀어나간다.  다시 틀 안으로 돌아온다. 이런 반복적인 패턴들이 삐뚤빼뚤한 선으로 드러난 것 같아 묘한 저항의 외침 같아 흔들리는 선들을 흥미롭게 바라보게 만든다.

리듬을 타듯 굴곡 있는 그들의 선은 6명의 개성에 따라 뾰족하고 날카롭기도 하고 단순하지만 힘이 있다. 어떤 선은 복잡하고 신비롭기도 하다.

의도되지 않은 선 안에 예술성이 보일 때 특히 눈이 번쩍 뜨여 나도 모르게 흥분하곤 한다.


이들은 알까? 자신들 모두가 예술가라는 것을?


오늘도 시각적 완성도나 기술적 수준에 구애받지 않는, 순수한 창작의 과정을 보았다. 그들의 작품 속에서는 그들만의 감각이 나타난다. 내면세계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그림만큼 탁월한 것도 없다는 생각을 수시로 한다.

그림을 그리며 개개인의 세상을 이해하고 감정을 공유하며 우리는 함께 성장하고 있다.


6명 수강생의 그림은 그들 자신에게는 물론이고, 그들을 사랑하고 응원하며 돕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큰 힘이 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예술의 가치와 힘이다. 그리고 이들이 예술가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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