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디지털드로잉 강사입니다.
첫 수업이 있던 날,
긴장되는 마음으로 강의실에 들어갔다.
샘플 수업을 하기로 한 금요일 오전 10시가 되기 30분 전에 미리 도착했다.
차에 시동을 걸고 복지관을 가는 내내 면접 봤던 날 면접관의 이야기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도저히 내 머리로는 어떤 말을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네? 예를 들면 어떤 부분을 말씀하시는 건지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
면접관은 잠시 머뭇하시며 어떤 적절한 예시를 들어야 할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강사님 옷에 침을 흘릴 수도 있고요....”
“장애인을 가르쳐 본 적은 없어서 확답을 드리기는 어렵지만 저는 특별히 불편할 건 없을 것 같습니다.”
똑똑..
강의실에 문을 열고 들어가니 휠체어를 탄 여성분이 앉아 계셨다.
“안녕하세요!” 나는 밝고 상냥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이름이 뭐예요?”
“네, 저는 ㅇㅇㅇ강사입니다. 선생님은요?”
“저는 유미예요. 집에서는 유진이라고 불러요.”
“아, 그렇군요. “
“나는 머리띠를 좋아해요”
머리띠? 갑작스러운 머리띠 이야기에 당황했지만 다시 질문을 이어갔다.
“네~ 그런데 왜 머리띠를 좋아하세요? “
“머리카락은 귀찮아요. 머리 말리는 거랑 흘러내리는 게 싫어요. 그래서 맨날 이렇게 짧게 잘라요.”
“저도 그래요. 그래서 저도 항상 단발을 고수해요. 버리가 길면 머리 감고 말리는 시간이 길어서 힘들어요. 우리 둘 다 비슷하네요. “
“애들 있어요?”
“네, 있어요. 아들 하나 딸 하나요.”
“나는 애들을 좋아해요. 애들 데리고 와요. 내가 놀아줄게요 “
빈말일지언정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 육아에 도움을 준다는 말은 언제 들어도 반가운 말이다.
“네~”
사실 유미님의 억양은 약간 충청도와 북한 사투리를 30:70의 비율로 섞어 놓은 AI 같은 말투였다. 특유의 억양과 목소리 톤이 낮고 단조로워서 우리의 대화가 꽤 깊이 있게 진행되고 있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같은 패턴의 질문과 대답을 했을 거라는 짐작을 했다.
”남편 있어요? “
“네”라고 하자 “남편도 줘요”라며 스틱 커피 2개를 나에게 줬다.
표정은 없지만 그녀의 따뜻함을 처음 건네받고는 처음의 긴장감이 조금 녹는 듯했다.
나머지 두 분이 곧 들어오셨고 오늘 수업하기로 예정되었던 세분이 모두 모였다.
원래 수강생은 4명이었는데 나머지 한 분은 못 오신다고 복지관 담당자가 미리 수업 전에 언질을 주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ㅇㅇㅇ강사입니다.”
웃거나 밝은 표정은 아니었지만 집중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내가 어떤 질문을 할 때마다 모두 “에” “어” 같은 일반적이진 않지만 대답이라는 건 확실한 각자의 소리를 내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반응은 내 목소리를 더 단단하고 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첫 강의에 어떤 수업을 할까 고민을 많이 했었다.
비록 한 번으로 끝나고 다시는 못 오게 될지도 모르는 샘플 수업이지만 거창하게도 내가 앞으로 어떤 철학을 가지고 수업을 할 것인지는 본 수업 전에 꼭 설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샘플수업이라 복지관 담당자도 장애인 수강생들 사이에 앉아있었다.
나는 디지털드로잉을 가르치는 강사이다.
디지털드로잉이 왜 인기가 있게 된 것인지 디지털드로잉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더 나아가 디지털드로잉과 연계되어 가지를 뻗을 창의적인 작업들의 예시들을 보여주며 과거에 비해 좋아진 기술로 인해 창의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주제로 열심히 설명했다. 또 AI와 관련한 디지털아트의 세계에 대한 맛보기와 유명한 디지털드로잉 작가들도 소개했다.
15분 정도 PT를 하고 마지막 한마디를 했다.
이제는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눈 깜박임만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도 있고 AI의 기술을 활용해 창작물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저는 여러분들 모두 아티스트가 될 수 있도록 함께 재미있는 그림 많이 그리고 싶습니다.
민망하리만큼 원대하고 당찬 포부를 설파하고 수업을 시작했다.
뇌성마비는 여러 원인인자에 의해 미성숙한 뇌 혹은 뇌의 손상으로 인해 임상적으로 운동과 자세의 이상을 보이는 비진행성 증후군이다. 몸이 원하는 대로 말을 듣지 않기 때문에 사실 처음에 이력서를 보내놓고도 의문은 남아있었다.
내가 아는 지식으로는 뇌성마비장애인들은 손이나 발 얼굴 근육들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알고 있어서이다. 어떤 식으로 이 분들이 그림을 그리게 될지 상상이 전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수업으로 샘플 수업을 진행해야 할지 막막하기도 했다.
일단 뇌성마비 장애인에 관해 아는 지식이 없었기에 흔들리거나 대충 그린 그림으로도 깔끔한 일러스트 또는 디자인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Autodraw라는 어플을 활용하여 첫 샘플수업을 마쳤다.
복지관 담당자는 내가 있는 앞에서 수강생들에게 수업 후기와 앞으로 참여 여부를 여쭤보셨다. 살짝 민망하긴 했지만 직설적으로 그들과 소통하는 것이 꽤나 익숙한 듯 보였다. 마치 90이 넘으셨던 우리 할머니에게 큰소리로 솔직하게 날 것 그대로 전달할 내용만 간략하게 전달했던 대화 방식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재미있었어요? 앞으로 이 수업 듣고 싶어요? “
모두 대답했다.
“네~~”
수업이 끝나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나 잘할 수 있겠다!’였다.
내가 가라앉아 있던 자신감을 끌어올려보려고 시작했던 외부 강의가 역시 나에게 도움이 되리라는 확신이 든 순간이었다.
복지관 담당자가 말했다.
“다음 주부터 나오실 수 있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