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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ycool May 06. 2024

봉사 학생들

개성 있는 그림

교실 문을 열자 수강생 두 명이 앉아있었다.

보통은 모두 일찍 도착해서 자리에 앉아있는데 오늘은 출석률이 처음으로 저조하려나 싶었다.


“안녕하세요! 한 주 동안 잘 지내셨어요?”


타이밍 다르게 “네” 또 다른 쪽에서 “네”하는 대답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복지관 담당자가 앳된 얼굴의 소녀 두 명과 함께 들어오셨다.


“이번주부터 3주 동안 ㅇㅇ여고 학생들이 봉사를 나올 거예요. 학생들이 도우미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


복지관 담당자가 문을 닫고 나가자 쭈뼛쭈뼛 두 여고생은 어색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렇지만 특유의 천진함과 밝음은 숨겨지지 않았다.


오전 10시 1분.


아직 두 명의 수강생이 도착하지 않았지만 수업을 시작해야 했기에 두 여고생을 강의실 앞쪽으로 안내했다.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우물쭈물하며 서로에게 먼저 하라고 눈짓을 보내다가 머리가 긴 친구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뭐.. 뭘 얘기해야 할까요?”


“이름 말씀하시고 원하시는 것 아무거나 다요. 노래를 부르시면 더 좋고요! “


모두 웃었다.


끼가 다분히 있어 보이는 개구진 표정으로 긴 머리 소녀는 대답했다.


“그럴까요? 춤도 추고?”


진짜 노래를 부를 거라는 예상은 우리 모두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한마디로 교실 안의 공기와 분위기는 한결 산뜻해졌다.


오늘 일정이 있어 못 오신 초코빵님을 제외한 나머지 수강생이 모두 도착했다.


“오늘은 자화상을 팝아트 느낌으로 그려볼 예정이에요. 각자 가지고 있는 패드로 사진을 찍어 보세요.”


사실 오늘 그림의 난이도는 좀 높은 편이었다.

자화상 팝아트는 일단 자신의 사진을 트레이싱하는 것이 기본인데 선을 따라 그리는 것이 비장애인들에게는 가장 쉽고 기초적인 수업이지만 장애인, 특히 뇌성마비 장애인에게는 가장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머린 긴 고등학생이 “잘 그려봐유~”, “어쩜 이렇게 잘하셨어유~~” 하면서 농담도 하고 분위기가 달라졌다. 한내들님이 이렇게 잘 웃는 사람이었나?


한내들님은 평소보다 확실히 더 잘하셨고 연신 웃고 계셨다. 턱 밑으로 침도 더 많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도 학생을 따라서 “십 분 쉬도록 할게유~” 라고 웃긴 사투리로 얘길 하자 교실에서는 까르르 웃는 소리로 가득 찼다.


기분 좋으셨는지 아이언님이 실습 온 학생들과 나에게 음료수 한 잔씩 사주셨다.

복지관에서는 아이스아메리카노가 1000원이다.

아메리카노가 1000원이라니..

이곳은 과거로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때도 있다.


오늘 수업에서 내가 기대한 점은 똑바르거나 정확한 선은 아니지만 각자의 느낌과 개성을 살리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얼굴의 형태가 심하게 일그러지거나 적절한 위치에 눈, 코, 입이 위치해 있지 않으면 얼굴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어 매우 조심스럽기도 한 작업이다.


수강생들의 열정은 남달랐다. 손에 힘을 주고 집중하면서 선 하나를 긋더라도 최선을 다해 그리는 것이었다. 물론 그렇게 집중해도 뜻대로 되지 않기에 흔들린 선들의 향연이다.


완벽주의 성향 때문에 역시나 정확한 선에 집착하시느라 자를 사용하는 아이언님은 스케치에 많은 시간을 쏟으셨다. 그래도 이 전에 비해 자 사용량은 많이 줄었음에 안도했다. 나도 비슷한 성향이 있기에 그런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다.


그림을 완성하고 모아서 보니 수묵화처럼 담백하게 그려내신 분도 있고 그림책에 삽입될 것 같은 은은하고 감성적인 느낌의 그림도 있었다. 패션잡지에서 볼 법한 감각적인 일러스트 작품도 탄생했다.


내가 강의하는 이유이고 더 열심히 강의 준비를 하게 되는 원동력이 바로 이것이다.


자신이 드러나는 그림, 개성이 살아있는 그림 말이다.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 쉽지 않음에도 90분 동안 최선을 다해 완성한 모두에게 박수를 쳐드렸다.


아멘님의 기도로 수업은 마무리가 되었다.

봉사 학생들과 함께 밝고 에너지 있는 분위기 속에서 오늘도 마음속에 따뜻함을 품고 집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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