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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ycool May 12. 2024

정이 들어가나 보다

강의 일상

“초코빵님! 2주 만에 만나는 거죠? 보고 싶었어요~”

지난주 초코빵님이 안 오셔서 허전했는데, 오늘은 제일 먼저 교실에 앉아있으셨다.


“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뇌성마비 장애인들 특유의 억양과 발음 때문인지 그들이 대답할 때는 유독 깍듯한 느낌을 받는다. 괜히 민망한 느낌이 들곤 해서 겸손해지는 마음이 생긴다.


드르륵 자동문이 열리면서 아멘님이 휠체어를 밀며 들어오셨다.

초코빵님과 캠핑에 대한 이야기와 지난주에 있었던 대화를 나누던 와중 아멘님이 가방에서 빨간색 무엇인가를 꺼냈다.


씨익 웃어 보이며 만 원짜리 두어 장과 천 원짜리 서너 장을 펼쳐 보이셨다. 관심을 끌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았다.


“돈 많으시네요~”


“네”


“저는 아멘님 돈을 탐내진 않지만 아멘님 돈을 갖고 싶어 하는 나쁜 사람들도 있어요. 아무한테나 지갑을 보여주거나 돈을 꺼내서 보여주면 안 돼요~ 알겠죠?”


“나 돈 많아요. “


“네~ 그러네요. 그니까 귀한돈을 잘 갖고 있어야 해요.”


“전에 어떤 남자학생이 내 지갑 뺏어서 도망간 적 있어요. 복지카드랑 돈이랑 다 잃어버렸어요. “


“어머! 휠체어 타고 가다가 길가에서 그런 거예요?”


“네”


“그것 봐요. 더 조심하셔야겠네요. 아무한테나 돈 보여주면 안 돼요. 알겠죠?”


나는 다시 한번 신신당부를 했다.


자동문이 열리며 수강생이 하나둘 들어오셨다.


오늘도 고등학교 1학년 봉사자들이 찾아왔다.


여고이기 때문에 여학생들이 앞으로 몇 주간 계속 오겠지만 변성기를 겪고 있는 여드름 투성이 남학생들도 왔으면 재미있었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아직 10살밖에 안된 아들의 미래 모습도 가까이서 예측해 볼 수도 있고 남학생들은 장애인과 함께하는 수업을 어떻게 적응할지도 궁금했다.

여자 장애인 수강생들의 반응도 내심 궁금했다.

한내들님이 여고생 봉사자들이 온 날부터 입이 귀에 걸린 것을 보면 알수있다. 감정을 숨기지 않는 이들이 순수하고 귀여워보인다.


봉사 학생들에게 패드에 있는 번호를 보고 수강생것을 찾아서 나눠달라는 재미있는 요청을 했다.

어리둥절해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히죽 웃어 보였다. 아직 학생들은 우리 반 뇌성마비장애인들의 상태를 모른다. 대화가 가능한지 뭐라고 물어봐야 하는지 도통 감이 오지 않을 것이다. 한 친구가 용기를 내어 말을 했다.


“3번 패드 주인 있으세요?”


패드 주인의 번호를 모두 외우고 있는 초코빵님이 손으로 오사카님을 가리킴과 동시에 오사카님이 손을 번쩍 들었다. 학생들은 안도의 웃음을 지으며 패드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긴장감도 풀고 각각의 수강생과 패드를 나눠주고 건네받으며 아이컨택도 해보라는 의미로 재미있는 미션을 던졌는데 성공적이었다.



성실하기로 제일가는 오사카님이 웬일인지 수업 진도가 잘 안 나가고 있었다. 검은색 펜으로 드로잉패드에 끄적끄적 뭔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었다.


보. 고


바로 아랫줄에


정. 연. 수



신나서 오늘도 칵칵거리신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도무지 상황이 이해가 안 가는 오카가님 옆자리에 앉은 실습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오사카님 첫사랑 이름이에요. 첫사랑 보고 싶다고 적으신 거예요. 지금 엄청 신나 있는 거예요.”


“아..” 고개를 끄덕이며 실습생이 아직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미소를 짓는다.


나는 웃으며 “오사카님. 수업시간에는 수업에 집중해야지 첫사랑을 생각하면 어떡해요~~”

내 농담을 아는 오사카님이 격렬하게 몸까지 비틀며 크게 입을 벌리고 웃으신다. 늘 그랬듯 나와 농담을 주고받으려고 장난을 치셨는지도 모른다. 참 재미있는 분이다.



수업.


오늘은 물주머니 속에 담긴 물고기를 그려보는 시간을 가졌다. 일찍 찾아온 더위에 바닷속 물고기를 그려보면서 조금이나마 더위도 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프로그램을 짰다.


수업을 끝내고 돌아오면서 이들과 여름을 지나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는 상상을 했다. 지난번에도 했었는데, 앞으로의 수업들이 기대될 때 이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언제까지 복지관 장애인들과 수업을 하게 될지,  계약된 대로 올해 11월 중순까지만 하게 될지 혹은 운 좋게 몇 년을 함께 할지 생각해 보았다. 언젠가는 헤어질 것을 생각하니 괜히 서글퍼졌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지만 벌써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을 미리 떠올리는 걸 보니 정이 들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괜한 걸 사서 고민하는 나..

시원한 여름을 맞이하며 신나게 그림을 그리고 더위를 날려버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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