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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아 Jan 22. 2024

마음의 에너지 분배

삶의 균형


  사랑을 한순간에 너무 줘버리면 금세 그 마음이 동나버리기 마련이니 나는 이 마음에 고삐를 틀어 쥐려 한다.

  언젠가, 한때 만났던 내 연인이 했던 말이다. 그땐 그렇게 말하는 그에게 약간 서운했다. 충분히 이해는 되었지만 아닐 수도 있지 않나, 하며 그 말의 뜻을 온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했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르고, 요즘에 들어서야 비로소 그게 무슨 의미였는지 체감하게 되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온 에너지를 쏟게 된다. 나의 꿈, 나의 일, 공부, 친구, 연인, 하다못해 음식마저도 하나에 꽂히면 몇 달간은 그것만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장점이라면 그 에너지를 모두 소진했을 때 후회가 없다는 점이 있겠다. 그러나 동시에 그토록 사랑했던 것이 무색하리만큼 그것들을 쉽게 다시 돌아보지 않게 된다는 치명적인 단점 또한 존재한다. 마음의 에너지 분배를 고르게 하지 못하여 멋대로 타올랐다가 지쳐버린다는 것은 여간 피곤하고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 몸인데도 그 조절을 할 줄 모르는 내 모습에 종종 무력감과 연민이 들 때가 있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을 균형감 있게 통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편으로는 덕분에 정이 많고 성실한 사람이라는 평을 퍽 자주 듣곤 한다. 설령 내가 실제로 그런 사람이 아닐지라도 그렇게 지내다 보면 나는 어느샌가 그런 사람이 되어 있기에 그런 나 자신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며 만족하고 있다. 다만 최근 들어 권태로움과 피곤함이 부쩍 자주 불청객처럼 찾아오곤 한다. 잠들기 전 침대에 가만히 누워 텅 빈 천장에 마음의 방을 수없이 그려보았다. 이미 포화상태인 마음에 불을 지피고 있는 것들의 알맹이는 다 타버리고 그 위로 벌써 희뿌연 잿가루가 쌓여가는 것만 같았다. 별안간 그려진 그림에 나도 조금은 마음의 고삐를 틀어쥘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나 스스로 뿐만이 아니라 내가 사랑한다 주장하는 그것들을 위해서라도 연습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감정을 쏟는 데에 저울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내 사람에게 100g, 내 일에 100g, 그리고 내가 욕망하는 것에 100g. 수치상 아주 정확하고 매우 공평하게 에너지를 적당히 분배할 수 있을 텐데. 심지어 가끔은 이 불씨를 꺼뜨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없는 에너지를 몸 어딘가에서 빚지면서까지 끌어오는 내가 한편으로는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 미련 맞아 보일 수가 없다.

  아아, 나는 이제 시작일 뿐인데. 벌써 지치면 안 되는데. …안되는데…만 의미 없이 되뇌며 떠나보낸 시간들이 있다. 바보 같다. 따지고 보니 이건 꼭 졸음운전 하느라 차선을 이탈한 질주하는 자동차…는 좀 잔인하니, 그래, 말 그대로 고삐 풀려 뛰어다니다 길 잃은 망아지 같은 꼴이다. 너무 잰 것처럼 과하게 이성적인 심성도 썩 좋은 꼴은 아닐 테지만 가끔은 감정적인 상태의 내 모습이 그렇게 느껴졌다.


  자유로이 달리되 이 고삐만큼은 꼭 잡고 있자. 언제든 천천히 가고 싶거나 멈춰 서고 싶거나 다시 달리고 싶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이걸 좀 더 미리 깨달았더라면 기울어진 내 마음이 조금이나마 더 곧은 수평선을 그릴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은 우선 집어치우고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매캐하게 덮고 있는 잿가루나 치워야겠다. 다시 정교한 수평선을 그려내기 위한 시작점을 찍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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