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녕아 Jan 31. 2024

Vol.2 꽃송이

Fais de beaux rêves, ma déesse

0.

  “그거 아니? 세상이 가장 어두운 시간은 해가 떠오르기 직전이야. “

  갈색 머리에 늘 긴 카디건을 걸치고 다니던 그녀는 둥그스름한 인상이 부드러웠다. 온몸에는 마치 꽃밭을 하루종일 거닐기라도 한 듯, 언제나 향기가 가득 밴 사람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사근사근하면서도 경쾌했다. 그녀의 이름은 <안젤라>였다.


1.

  열일곱에서 열아홉 무렵의 앨리스는 하릴없이 암흑 속을 떠다니고 있었다. 어릴 적엔 꽤나 밝고 활기찬 그녀였으나, 언젠가부터 걱정과 불안이 아가리를 쩌억 벌리고 그녀의 꼬리를 물더니 도통 놓아주지를 않았다. 앨리스에게는 어딘가 소심한 구석이 생겼고, 일상 시간 동안의 최소 90퍼센트는 늘 뚱한 얼굴이었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사회가 정해둔 순리가 절대적 규칙인 것 마냥 치열하고도 남루한 삶을 살고 있었다.

  늦겨울 추위가 잠에 들 준비를 시작했다. 때맞춰 꽃봉오리가 고개를 빼꼼 내밀 때쯤, 앨리스는 그녀를 만났다.


  “나는 안젤라야. “

  선한 인상에 귀엽게 웃는 얼굴이었다.

  “잘 부탁해.”


  심지가 곧고 단단해 어른스러운 것 같으면서도, 의외로 애교 섞인 아이 같은 목소리가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앨리스는 생각했다. 분명 사랑을 듬뿍 받고 공주님처럼 살아온 아가씨일 테지. 앨리스는 약간의 부러움이 섞인 호감의 눈빛으로 안젤라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자신의 일종의 편견이자, 어쩌면 자격지심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2.

  그런 사람들이 있다. 어른스럽고 당당하며 주변의 타인에게까지 밝은 기운을 전염시키는 사람. 그런 사람들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 많은 것을 받으며 살아왔기에 그만큼 베풀 줄 아는 사람, 그리고 삶에 수많은 역경과 사소한 불행들이 있었지만 현명하고 용감하게 헤쳐 나온 사람. 안젤라는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이었다. 이렇게까지 사람이 눈부신 에너지를 낼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안젤라의 타고난 재능과 성품 그리고 성실함 또한 그녀를 밝히고 있던 큰 일부였다.

  앨리스는 안젤라와 비슷한 상황에 살고 있었으나 그 어둠 속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길을 헤매고 있던 그녀에게 이정표가 되어주려는 듯 안젤라는 손을 뻗었다. 그로 인해 앨리스의 마음에는 안젤라의 이름이 새겨져 시나브로 움이 트기 시작했다.


  “자, 세 번씩 내가 하는 말을 크게 따라 해.”

  안젤라가 루틴처럼 말했다.

  “원한다면 할 수 있다. 나는 내가 자랑스럽다!”

  안젤라는 아이처럼 사랑스럽고 장난기가 서린 웃음을 지었다.

  “너는 정말 예쁜 사람이야, 앨리스. 너는 뭐든지 해낼 수 있어. 나는 네가 언제나 자랑스러워. “


  나의 자부심, 나의 자랑, 내 여신님. 원체 무뚝뚝하던 앨리스에게는 듣기만 해도 쑥스러운 말들을 안젤라는 당연하다는 듯 매일 주문을 거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무척이나 과분했다. 그 과분함이 넘치도록 감사해서 종종 앨리스는 부끄럽게도 왈칵 올라오는 울음을 참아내지 못하곤 했다.


3.

  그 시절은 앨리스의 인생에서 가장 깊은 구렁텅이였다. 그렇지 않아도 울적한 앨리스에게는 절망뿐인 시기였다. 구렁텅이가 너무 깊었던 나머지 다시 올라갈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그녀는 손 놓고 그저 멍청하게 앉아만 있었다.


  “앨리스, 혹시 해가 뜨기 직전의 시간을 본 적이 있니?”

  안젤라는 앨리스의 옆에서 나지막이 말했다.

  “해가 떠오르기 바로 직전은 정말 캄캄한데, 곧바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세상이 확 환해져.”

  여전히 안젤라의 목소리는 따뜻했고 확신이 가득했다.

  “네가 지금 그 시간에 있는 모양이야. 두고 봐, 얼마 안 지나서 네 세상이 한순간에 밝아질 테니까.”


  몇 년이 흐른 뒤에도 앨리스는 울적함에 젖어 늦은 새벽바람을 맞을 때면 그 목소리를 떠올렸다. 여명처럼 빛나던 목소리를.


4.

  하얀 꽃잎이 안젤라를 감싸 안듯 그녀의 주변으로 부드럽게 몰아쳤다. 꽃향기가 나는 사람이라 꽃잎들이 제 친구라도 되는 줄 알고 데리러 온 모양이다. 늘 삶에 감사하다던 안젤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삶이 변했을 것이란 걸 그녀가 알았으면 좋겠다고 앨리스는 생각했다. 특히나 앞으로 살아갈 제 인생의 절반을 어쩌면 안젤라가 바꾸어놓았다고. 앨리스는 안젤라의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가 좋아하던 음료수와 과일, 그리고 그녀가 쓰던 안경이 사진 주변으로 놓여있었다. 지금 쯤이면 따스한 꽃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을 테지.


  “나는 당신이 참 자랑스러워요.”

  앨리스는 눈을 감고 기도했다.

  “조심히 가서 좋은 꿈만 꿔요, 내 여신님.”






“죽으면 좋은 얘기만 해주네. “
”그게 송덕문이라는 거야.“
- 문득, 좋아하는 뮤지컬의 한 대사가 떠올랐다. 이곳에 있기엔 너무나 눈부셨던 당신. 그곳에선 매일매일이 축제이길, 안식이길, 평화이길. 진심을 담아 여러송이의 꽃들을 건네며.
for. Sagesse angelique


이전 03화 S#2. 이화우 흩날릴 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