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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아 Nov 18. 2023

S#2. 이화우 흩날릴 제

매창

  겨울 눈송이가 채 녹지 못한 듯 아직 온통 새하얀 배꽃잎이 머리 위로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떨어지는 꽃잎 한 장, 두장에 애써 덮어두었던 그이의 모습이 다시 슬금슬금 피어올랐다.

  그이는 하이얀 꽃잎 바람을 맞으며 눈을 손톱달 모양으로 휘어 뜨리고, 양 뺨에 보조개가 폭 패일 정도로 싱그럽게 웃곤 했다. 우리가 만난 시간은 꽃봉오리가 피어나는 찰나에 불과하였으나, 그 두근거림이 꼼질거리며 생명력을 토해내는 순간이 어찌나 아름다웠던가.


  배꽃잎이 비처럼 우리의 몸을 적실 때, 떠나는 그이와, 그런 그를 하염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나의 뺨도 눈물로 젖어들었다. 붉어진 눈을 비비며 그이의 옷자락을 붙들어 보았다. 붙잡히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으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토록 하찮은 저항뿐이었다.


  “달리 바라는 것은 없어요.”

  울음이 섞여 묽게 번진 목소리가 제멋대로 튀어나왔다.

  ”함께 있어요. … 그렇게 해줘요. “


  건조한 봄바람이 한아름 몰려와 그이와 나의 사이 한 치도 되지 않는 거리에 다시 배꽃비가 내렸다. 그이의 웃음만큼 싱그럽고 화사한 꽃비는 매정하게도 그칠 줄 몰랐다. 그 비가 너무도 눈부셨던 탓일까, 아니면 나의 눈에 고였던 눈물이 멈추지 않았던 탓일까. 서서히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이 흐려지고 흐려지다 이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하얗게 꽃비가 쌓였던 길가는 주홍빛 물이 들었다. 바람은 여전히 건조하긴 마찬가지였으나, 열심히 달리던 생명들을 재워줄 포근한 냄새가 함께 묻어있었다.

  한 발짝에 바스락, 또 한 발짝에 바스락.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다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눈물이 나도록 푸른 하늘의 빈틈 구석구석에 색색의 나뭇잎들이 수 놓여 있었다. 고요하게 허공을 맴도는 가을의 풍경은 모자이크처럼 겹쳐져 내게 그이의 형상을 떠올렸다. 나는 두 눈을 꼭 감았다. 그이의 모습이 검은 바탕에 한 조각씩 퍼즐처럼 나타나 점점 생생해지나 싶더니 온전한 모습을 갖추기 전에 낙엽이 되어 흩어져 우수수 떨어졌다.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은 꽃바람이 되어 봄날의 그 시점에 잔인하게 내리던 비로 돌아와 내 눈가를 또 적실테다. 이 한숨바람에 배꽃비가 내리면 꿈에라도 그이를 다시 만날 수 있으려나,

  배꽃은 비가 되어 흩날리고 그이는 꽃이 되어 바람 속에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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