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네 번째 시
널 두고 떠나는 그 길에
널 두고 떠나는
이 길을, 나는
천 번, 만 번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비에 젖은 단풍도 깔아보고,
소복소복 흰 눈도 쌓아보고
어느 계절, 어느 날씨를 상상해도
떠나는 나는 무겁고,
남는 너는 웃어주지 않는다
네가 웃어줬으면 좋겠다
활짝 웃어줬으면
난 괜찮다고
잘할 수 있다고
아빠와 충분한 추억을 저장했으니
이젠 괜찮다고
남은 너의 길에
꽃잎 가득 뿌려주진 못해도
여린 네 무릎이 다치지 않게
풍성한 클로버 한 가득
선물하고 싶다
해 저물 때
홀로 걷는 길에
은은한 풀꽃 향기로
너의 곁에 남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