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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리 Dec 27. 2023

부지런한 백수 생활

제2장 번역가님, 잘 부탁드려요

귀국을 준비하면서 나는 인도네시아 해외 취업은 물론이고 잡코리아, 사람인, 인크루트 홈페이지를 수시로 들락날락하며 일자리 정보를 찾았다. 당장 지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략 회사들이 원하는 인재상을 알고 싶었다. 


앞으로 인도네시아어로 새로이 경력을 쌓으려면 어느 회사이든지 신입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당시 나는 서른 살을 몇 주 앞둔 상태였다. 몇 년 전 회사 취업을 앞두고 정장을 입고 면접장 앞에서 대기했던 때를 떠올리니 웃음이 났다. 면접관의 질문에 버벅대거나 긴장해서 식은땀을 흘리기도 했던 그때. 그때는 서툴지만 열정이 넘치던 20대의 나를 ‘그 나이 때는 그럴 수도 있지’라며 너그럽게 봐주는 면접관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 갑자기 새로운 일을 해보겠다며 면접장에 온 서른 살 무경력자를 그 시절의 인자한 마음으로 봐 주는 면접관들이 얼마나 있을까? 온갖 걱정이 앞섰지만 나는 인도네시아가 좋았고, 인도네시아어를 사용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고 싶었다. 


출국 일자를 한참 앞둔 때부터 구직 사이트에 드나들며 인도네시아어 가능자를 찾는다는 온갖 공고를 다 들여다보았지만 나한테 꼭 맞는 조건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언어 전공자 또는 (현지 거주 비자가 있는) 교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고였고, 그런 게 아니라면 한국어를 잘하는 인도네시아인을 대상으로 채용하는 식이었다. 


다행히 아직 귀국까지는 시간이 남았으니 천천히 계속 알아보면 나한테 맞는 공고가 나올 것이라며 마음을 다스렸다. 그러나 출국일이 점점 가까워지고 한국에도 코로나 비상이 걸리면서부터는 기존에 있던 공고들도 서둘러 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무역, 관광 분야가 큰 타격을 입기 시작하면서 해당 기업들의 신규 채용 건은 큰 폭으로 줄며 나중에는 한 건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나는 미래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본격적인 백수 생활을 시작했다. 


코로나 시국인지라 가급적 외부 활동을 자제하라는 정부의 지침도 있었지만, 출근을 할 일이 없으니 딱히 밖에 나갈 일도 없었다. 밥을 챙겨 먹고 집 안 청소를 조금 하다가 혹시나 뭐가 올라온 게 있을까 싶어 구인 공고 사이트의 새로고침 버튼만 누르는 것이 일과였다. 그러다가 시간이 남으면 바깥 창문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출근길을 부러운 눈길로 쳐다봤다. 또 그러다가 시간이 남으면 인도네시아어를 공부했다. 


인도네시아어는 영어의 토익, 토플 시험처럼 능력을 검증해 볼 수 있는 시험이 자주 열리지 않았다. OPIc, 관광통역안내사 시험 같은 게 거의 전부였지만 접수도 까다롭고 시험 일자도 자주 있지 않았다. 물론 비용도 비쌌다. 


백수로 할 일 없이 지내던 그때 나는 ‘나중에 일하면서 시험공부 하려면 힘든데 차라리 잘됐지, 지금 공부하자.’라는 마음을 가지려고 애썼다. 시험을 잘 봐서 자격증을 얻는다 한들 이걸 써먹을 수 있는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 미지수였지만, 그때의 나는 탈출구 없는 긴 터널을 지나는 것만으로도 막막했다. 그래서 불안한 내 마음을 최대한 잘 달래주고 응원해 주려고 애썼던 것 같다. 


그렇게 강제 백수로 지낸 지 2달째, 평소처럼 잡코리아 홈페이지의 새로고침 버튼을 누르던 어느 날, 드디어 ‘이거다!’ 싶은 공고를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백수의 하루는 생각보다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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