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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리 Dec 25. 2023

한국은 위험해

제2장 번역가님, 잘 부탁드려요


해외 봉사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던 때는 2020년 3월로, 이제 막 우리나라도 정부 차원의 COVID-19 비상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코로나라는 엄청난 바이러스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 귀국길이 드라마에 나오는 장면처럼 상당히 따뜻한 모습일 것으로 생각했다. 


게이트가 열리고 두리번거리는 내 눈동자에 비친 가족들의 모습. 부모님이 나를 꼭 안아주시고, 잘 왔다고 맞이해주시는 따뜻한 음성. 공항을 오가는 많은 여행객들이 미소 지으며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풍경. 하지만 이미 자카르타에서 인천행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공항은 한산했고, 왠지 모를 긴장감만 맴돌았다.


내가 일했던 기관의 동료들은 출국일이 결정되자 "지금 한국에 가는 건 위험해" 라고 하면서 정말 괜찮겠냐는 질문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해왔다. 뉴스로 접한 한국의 상황은 두려웠다. 마스크 대란이 일어 아침부터 약국 앞에 줄을 선 사람들을 보며 아직 마스크가 낯선 내 입 주변을 괜히 한 번씩 쓰다듬기도 했다. 


출국일이 다가오자 나는 인도네시아 인터넷 쇼핑몰에 접속해서 여행용 가방에 가득 담을 수 있을 만큼의 마스크를 샀다. 한국처럼 KF 마크가 들어간 좋은 마스크는 아니었고, 대부분 수술용 마스크처럼 얇긴 했지만, 당시 분위기로는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충분한 양의 마스크가 담긴 가방을 끌고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탑승객 수는 비행기 좌석 수의 20%도 안 되는 듯했다. 밤 비행의 피로가 몰려오자 옆자리 팔걸이를 올리고 쪼그리고 누워서 쪽잠을 잤다. 집에 간다는 기쁨,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이 뒤섞여 알 수 없는 혼란에 빠졌던 마음이 잠시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7시간의 비행 끝에 초조한 마음으로 공항 밖으로 나왔다. 가족들이랑은 집에서 재회하기로 미리 얘기했던 터라 감동적인 재회의 한 장면은 연출되지 않았다. 마스크를 새것으로 바꾼 후 지하철을 탔다. 평일 오전이었는데도 지하철 내부 역시 한산했다. 코로나 때문에 그렇구나 싶어 걱정스럽다가도 오히려 내 몸 절반만 한 캐리어를 두 개씩이나 끌고 가기에는 괜찮은 환경인 것 같아서 다행스러웠다. 집 앞에서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자 ‘삐리릭’ 하며 경보 해제 알림이 흘러나왔다. 이로써 007 작전 같았던 긴장된 귀국 여정은 끝이 났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이제 살았다!’ 하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때의 난 몰랐다. 본 게임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는 것을.


현관 앞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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