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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리 Feb 07. 2024

커피는 맥심, 커피잔은 별다방

제4장 번역가가 일하는 법

나중에 글을 쓸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 몇 년 전에 마음이 아주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가장 크게 마음을 다친 때이지 않을까 싶다.


제대로 된 취미라도 있으면 취미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했겠지만, 나는 그때까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때 동생 집에 갔다가 동생이 준 스타벅스 머그잔에 커피를 마셨는데, 잔을 쥘 때마다 손에 닿는 촉감이 마음에 와닿았다.


캠핑용으로 나온 스테인리스 머그잔인데도 막상 손바닥을 대면 차가운 느낌이 들지 않고 부들부들한 느낌이 났다.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부드럽고 포근한 느낌 때문인지, 커피를 마시는 동안 복잡했던 생각이 어느 정도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평소에 스테인리스 잔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는데, 이상하게 그 컵은 자꾸 손바닥으로 감싸 쥐고 싶었다. 컵에서 위로를 얻기는 처음이었다. 그렇게 '난 이걸 좋아해'라고 말할 무언가가 하나 생긴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도 자꾸 그 잔을 쥐고 홀짝홀짝 마시던 커피가 생각났다. 집에 놓여 있던 잔에다 더 맛있고 비싼 음료를 담아 마셔도 동생 집에서 느꼈던 그런 감정은 다시 생기지 않았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집 근처 스타벅스에 들러 동생 집에서 봤던 그 머그잔을 구입했다. 잔 하나에 2만 원 가까이하는 가격에 놀랐지만, 집에 와서 다시 잔을 손으로 만져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부모님 댁에서 기르는 고양이의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어도 이런 느낌을 못 받았는데….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신기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 머그잔으로 매일 커피를 마신다.


맛 감별사가 아니기 때문에 커피는 맥심 블랙이면 충분하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커피를 준비한 뒤에 노트북 오른편에 놓는다. 한 단어씩 번역하다가 막힐 때마다 한 모금씩 홀짝 마신다. 가급적 손잡이를 사용하기 보다는 두 손바닥으로 잔을 감싸쥔 후에 마신다. 그래야 커피의 맛도,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커피잔의 살짝 거친 듯한 포근함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스테인리스라는 재질 탓인지 컵 내부가 변색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늘 똑같은 블랙커피만 마시니 크게 개의치 않는다. 무게가 가벼워서 밖에서 일할 때도 에코 컵으로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이제는 노트북과 더불어 일할 때 필요한 필수 장비 중의 하나가 되었다. 


저녁에는 디카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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