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7시 10분, 직장을 다닐 때라면 출근 준비로 한창 바쁠 시간일 테다. 같은 평일이라 해도, 주말 쉬고 출근하는 월요일은 왠지 더 부담스러웠다. 더구나 긴 연휴 뒤에 월요일은 말해 뭐 하겠나.
월요병의 배경이 없는, 등 따시고 배부른 한량들은 절대 공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그 한량처럼 보이는 이들이 꽤 눈에 띈다. 예전과 다르게 직장이란 공간의 의미가 다양해져 그런지도 모르겠다. 꼭 현관을 나서지 않더라도 내 집 책상 모니터 앞에만 앉아도 직장이 되는 세상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모든 직군이 해당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더 이상 출근에 의미를 두지 않는 유연한 조직들이 늘어난 것만큼은 사실이다. 그래서 예전만큼 월요병 강도가 셀 것 같지는 않다만, 주말을 보내고 업무에 복귀하는 월요일이란 점에서 부담스럽기는 매한가지 일 것이다.
지금처럼 일터의 개념이 자유롭지 못했던 시절에 나는,
이른 아침 눈을 뜨면서부터 양손을 모으지 않아도 푸념처럼 긴 기도가 절로 나왔더랬다.
무겁게 잠자리에서 일어나 세면대 앞에 서기 전까지 꿍얼꿍얼 얼마나 많은 작심과 결심을 되뇌고 번복해야 대문을 나설 수 있었던지, 당시 내 사정은 그랬다. 게다 출근길은 어떻고! 지옥철에서 겨우 몸을 빼서는 현실의 끈을 잡아끌고 질척이는 발걸음으로 어렵고 어렵게 회사 정문으로 들어서곤 했었다. 정말이지 하루에도 열댓 번 때려치우고 싶은 맘이 솟구쳐 올라왔었지만, 그만둘 수는 없었다. 당시 월요일 오전 시간대에 집어던진 사표만 해도, 아... 써 놓고 던지지 못한 사직서가 이면지 박스로 하나는 될 만한 양일 것이다. 그렇게까지 안간힘을 쓰고 있는 내가 안쓰럽고 때론 사표 앞에서 우유부단한 자신한테 화가 치밀기도 했었다. 그게 직장이다. 당장 때려치우고 싶어도 뜻대로 할 수 없는 곳. 딸린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 한 입 먹여 살리는 일인데도 사표 앞에서는 생각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직 후 공백을 거쳐 지금보다 더 좋은 회사로 옮겨 앉을 확률은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계산이 나오는 일에 무모하게 베팅을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저 하루 해가 저무는 걸 감사하게 생각했었을 정도로 힘든 시기가 내게도 있었다.
월요일이 지나고 있다.
낼은 화요일이다. 그렇다고 안심은 마라.
먹고사는 일을 때려치우지 않는 한, 닷새의 월요일과 담금질을 압박하는 또 다른 이틀이 있을 뿐이니. 염장질은 아니다. 고만고만한 동병상련끼리 누가 더 힘든지, 서로의 견딤을 재서 뭐 하겠나.
그저 그렇게 웃으며 견뎌내자는 자조와 위로 그 어디쯤에 얘기를 하는 것이니 말이다.
욕다발이 절로 터지는 닷새 중 어느 월요일,
혹시라도 오전에 휘갈긴 사표가 있다면 당장 뛰 가서 변기통에 시원하게 내리고, 웃으며 욕하자. 그 대상이 암울하게만 보이는 내 현실이든, 꼰대 상사든, 네 가지 없는 후배든, 하다못해 겁나게 느려터진 와이파이가 됐든 뭐든 말이다. 복화술이 필요한 요일이다. 절대 입을 빼죽거려서는 안 된다. 할 수만 있다면 고상한 얼굴 표정까지 장착하기를 권한다. 이게 의외로 재미있을 수 있다. 누가 알겠나. 혹시 이 복화술이 또 다른 부케가 될는지.
이렇게, 어떤 우스운 방법으로든 우리의 월요일이 견뎌낼 수 있을 정도의 하루이길 바란다.
내일은 화요일이다. 이번엔 진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