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은 내게 있어 자주 기차를 타러다니는 곳이었다. 광장 곳곳에 노숙인들이 계시고,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리거나, 무료 급식을 하거나, 시위 운동을 하는 것도 보았던 적이 있다.
서울역 지하철 안 쪽에는 들어가 본 적이 없고, 쪽방촌도 그 뒤에 그렇게 있는지도 몰랐다. 버스에 내리면 항상 그 자리에 계신 노숙인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10년째 그곳에 계셔서 아직까지도 뵐 수 있었다. 이게 다행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살아계신다는 것이 안도감이 드는 것 같다. 한편으론 다시 집에 가 계시고 그 역 바깥 그 자리에 안 계시는 것이 더 낫기도 하기 때문이다.
항상 그곳을 지나다니면서 조금은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곳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갈 길을 갔다. 하지만 계속 속으로는 어쩌다 이런 곳에 계시는 걸까 걱정도 들었다. 대화라곤 걸어볼 수도 없었고 뭘 건네본 적도 없었다.
그렇게 10년 전에 처음 가보고는 10년 후에 좋은 기회로 노숙인 사역을 하게 되었다. 첫 경험이었는데 이 날 비가 막 쏟아져서 바깥에 계신 노숙인들께서 지하에 계셨었다. 오랫동안 이 사역을 하셨던 분들이 지금까지 이렇게 많은 분들이 계신 건 처음 보신다고 하시면서 나에게도 이 비는 특별한 것을 경험하게 해 주었다.
간식들을 준비해서 갔고 우르르 몰려오셔서는 받아가시고, 비 오는 날임에 우리의 우비마저도 가져가시겠다고 하셨다. 간식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50인분 이상 많이 준비했는데 금방 다 나눠드리고 모자라기까지 했다.
다들 20대이고 갓 20살 친구들, 고등학생 친구들도 왔다. 이 시간 동안 팀원들이 노숙인들과 대화도 곧잘 하고, 들어주고, 기도도 해주는 모습에 조금은 거리감이 느껴졌다. 내 인식에는 다가가기 어렵고 대화도 어려우니 그렇게 하기가 힘들었지만 이들은 그렇지 않아서 어린데도 대단하다 싶었다.
그러나 나도 어떤 한 할아버지 노숙인이 계신 곳에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술에 취하신 분이셨고 목발을 가지고 계신 분이셨다.
술에 취하셔서 어떤 이야기를 하시는지 제대로 듣기가 어려웠는데 갑자기 불쑥 자신이 환자라며 병원 환자 카드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고선 다친 곳을 보여주시려고 웃통을 탈의까지 하셨다. 환자이지만 병원비가 없으니 그렇게 지내고 계신 것이라 하셨고 그 상황을 견디기 힘들어 술을 마셔 취해서 현실을 피하신 것 같아 보이셨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어느 영역에서는 이야기하시기 어러우셔서 대답을 하시지 않으시고 고개를 저어가시기까지 하시고, 다른 이야기를 꺼내셨다.
내가 편의점을 다녀오는 동안 다른 팀원들이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기도까지 해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헤어지고는 수개월 뒤에 또 만나게 되었는데 나를 기억해주시고 계셨다. 술은 끊으셨다고 그런데 주위가 너무 시끄러워서 정신이 멀쩡하니 힘드시다고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고 다음엔 귀마개를 사가겠다며 하는 다른 팀원.
천주교인들도 오셔너서 작은 간식들을 건네주시고 가셨다. 또 다른 단체는 수액도 맞춰주신다고도 하시고, 필요한 물품도 전달해주신다고 하셨다.
이들에게는 어떤 것이 이들을 살릴 수 있을까 생각을 진지하게 해 보는 시간이었다. 나라도먼저 잘 살아내보자라는 생각도 동시에 함께 들었고, 대화의 시간동안 이들과 함께 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