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중식이다."
쿨하게 말씀하시며 식탁 위에 내려놓은 엄마의 중국식 덮밥에 시각과 후각이 먼저 자극된다. 푼 계란과 새우살, 적당히 익은 야채, 미온의 자작한 국물이 한 입 떠먹는 순간 절로 탄성이 나올 만큼 감미롭다.
엄마의 밥상 지론은 아침과 저녁은 간단히, 점심은 섭섭지 않게 먹는 것이다. 자식들이 출가하고 배우자도 곁에 없어 보통은 편히 먹기 마련이지만, 엄마에게 대충은 없다.
엄마표 한상 차림
살이 두툼한 고등어, 삼치, 조기 구이 같은 생선 반찬은 기본이고, 각종 고기, 전골, 국, 찌개 등 세심하게 차려진 요리가 번갈아 밥상 위에 오른다. 엄마는 대단한 상차림이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지만, 밖에서는 백반집을 찾거나 하루 한 끼 제대로 챙겨 먹는 것도 쉽지 않다. 지천명을 넘긴 나이에 여전히 엄마의 밥상을 받을 수 있다는 건, 더없이 과분한 호사다.
흐린 날 끓여주시는 김치 칼국수는 더없이 특별하다. 걸쭉한 국물에 익은 김치를 넉넉히 풀어 시원함을 더하고, 마지막에 식은 밥까지 넣어 보글보글 끓여 먹으면 뱃속 깊이 뜨끈한 포만감이 차오른다. 일반 칼국수와 달리 식당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메뉴라, 차려주실 때마다 황송한 마음으로 받아먹는다.
가족이 모이는 날이면, 엄마는 아침 일찍부터 잡채를 만드신다. 탱글탱글하게 삶은 당면은 시중의 갈색 당면보다 한층 투명해, 빨강·노랑·초록의 채소 색감이 더욱 선명하게 살아난다. 단짠 한 맛 대신 새콤한 간이 매력적이라, 자식과 손주들까지 앞다투어 젓가락을 뻗어 입에 넣기 바쁘다.
구운 고기와 와인을 즐긴 뒤, 엄마가 “비빔국수 해줄까?” 하고 넌지시 물으신다. 배가 불러도 비빔국수를 위한 공간은 늘 남아 있다. 쫄깃한 면에 달콤하면서도 자극적이지 않은 고추장 양념을 버무리고, 계란 고명을 얹어내면, 단순한 음식에도 정갈함이 깃든 엄마의 신념이 전해진다.
음식을 하면서 엄마는 종종 말씀하신다.
“너도 배워라, 이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정작 가르쳐 주시진 않는다. 엄마의 손맛을 이어받고 싶어서라도 하루빨리 레시피를 배우고 싶지만, 늘 “나중에”라며 한사코 주변을 물리신다.
이번만은 기어코 배우리라 어깨너머로 서성거릴 때면, 꼭 결정적인 순간에 “저기 베란다 가서 대야 하나 갖고 온나” 하고 심부름을 시킨다. 부리나케 가져와 보면, 음식은 이미 완성된 채 자태를 뽐내고 있다. 큰딸과 며느리 역시 그릇, 대파, 양파 심부름에 번번이 타이밍을 놓쳤다. 고로, 엄마의 조리법을 이어받은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엄마의 손맛, 카메라에 담다
흐르는 세월 속에 당신의 기력도 차츰 쇠잔해 가시겠지요. 그럼에도 어미로서의 소임을 놓지 않으려는 마음 어찌 모르겠습니까. 훗날 곁에 계시지 않을 때면, 저 또한 저만의 레시피로 음식을 만들어 먹게 되겠지요. 하지만 한평생 길들여진 입맛이 하루아침에 달라지겠습니까.
언제, 어디선가, 우연히 무언가를 먹다가 익숙한 손맛을 느꼈을 때, 입 안에 넣어주며 지으시던 엄마의 미소가 문득 떠오를 때, 얼마나 하염없이 눈물을 쏟게 하려 그러시나요. 얼마나 사무치게 그리워하라 하시는 건가요.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어느 순간부터 엄마의 음식을 하나둘 휴대폰에 담기 시작했다. 평소 잘 찍지 않던 음식 사진이지만, 엄마의 음식만은 오래 간직하고 싶어 새로운 습관을 만들었다. 그렇게 쌓인 사진들은 언젠가 내가 엄마의 레시피로 만들어낼 미래의 요리책이자, 엄마의 시간을 기록한 앨범이 된다.
주말 점심은 고기배추찜이다. 저린 알배추에 간한 소고기를 싸서 찜통에 찐 뒤, 알큰하고 담백한 소스를 얹는다. 한 잎 베어 물면 촉촉한 육즙이 터지며 미간이 절로 찌푸려질 만큼의 감동이 밀려온다. 물론, 조카와 치과에 다녀오는 사이 이미 다 만들어 놓으셨다.
“소스는 어떻게 만들었어?”
“고기 잡내는 어떻게 잡은 거야?”
속사포 같은 질문에도, “걍 무라~”라며 입을 닫으신다. 엄마는 오늘도 레시피를 알려주지 않으셨다.
엄마의 배추찜
엄마의 중국식 덮밥
엄마의 잡채
엄마의 비빔국수
2025. 2. 21. 오마이뉴스 <배우 차유진 에세이> 게재
2025. 8. 29. 글 개정. <브런치>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