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트라우마를 아시나요

by 차유진


오전 10시, 119 구급차가 빨간 불빛을 내뿜으며 아파트 정문을 빠져나간다. 창문 앞에 바짝 붙어 서서 그 뒷모습을 바라본다.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고, 눈에 열이 차오르더니 이내 눈물이 맺힌다.



울컥 차오르는 숨을 크게 내뱉어보지만, 사이렌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몸은 굳은 채로 서 있다. 공식 의학 명칭은 아니나, 친구는 이런 내 반응을

‘119 트라우마’라 불렀다.


사이렌 소리에 멈춰서는 사람들

구급차가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도로를 달릴 때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뉜다. “어, 구급차다!” 하고 지나치는 이와, 순간 정적에 잠기는 이. 전자는 타본 적 없는 사람, 후자는 환자든 보호자든 그 안에 몸을 실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후자는 구급차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한다. 창문 없는 차 안을 훤히 들여다보듯, 환자와 보호자가 어떤 모습과 심정일지를 짐작하기 때문이다.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갔다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면 다행스러운 후일담으로 남는다. 하지만 돌아오지 못할 경우, 응급실 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시간은 긴박하게 흐른다.



의사에게서 들려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 숨 돌릴 틈 없는 절망적인 절차들이 겹겹이 쌓이며 가슴 한가운데 오래 지워지지 않는 멍을 새긴다.



아버지와의 마지막 순간도 구급차 안에 그대로 남아 있다. 4년 동안 파킨슨병을 앓으셨지만 다행히 초기에 발견되어 진행은 더뎠다. 그러나 몇 달 사이 급격히 체중이 줄자 병원 진료를 예약하고 입원 대기 중이었다.



2주 넘게 피 말리는 무소식 끝에, 결국 119에 전화를 걸었다. 구급대원들이 집 안으로 들어와 아버지를 부축했고, 나도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



구급차를 타면 안도감이 들 거라는 기대와 달리, 낯선 공간에 올라탄 순간부터 긴장감이 배가됐다. 차가 출발하자 터진 눈물은 멈출 줄 몰랐고, 가까스로 병원에 도착해 한숨을 돌린 것도 잠시, 의사가 위암을 의심한다는 소견을 전하자 넋이 나간 상태로 검사와 수납을 반복하며 여기저기 불려 다녔다.



혼비백산 병원 곳곳을 뛰어다니다 보니, 손에 들고 있던 아버지의 지갑은 어느새 주인 모를 검은 비닐봉지로 둔갑해 있었다. 열어보니 삼선무늬 슬리퍼 한 짝이 슬며시 얼굴을 내밀었다. 봉지의 주인도 어쩌면 나와 같은 심정으로 병원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목이 거듭 메어 왔다.



아버지는 급성 위암 4기였다. 돌연변이성 발병이라 한 달 안에도 빠르게 전이될 수 있는 케이스였다. 의사조차 "왜 하필 이 암에 걸리셨나"라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호스피스 병동이 있는 병원으로 옮겨 연명치료를 권했다.



"집에는 못 가겠구나...!"



아버지가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병원에 들어온 지 일주일 만에 다시 구급차를 탔다. 달리는 차 안, 이동침대에 몸을 누인 채 고요히 천장을 응시하시던 아버지의 두 눈과, 닦아도 닦아도 흐르는 눈물을 몰래 훔치던 한 손, 너덜너덜해진 병원 서류봉투를 꼭 쥐고 있던 다른 손의 축축한 물기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아버지의 병세는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어,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긴 지 한 달 만에 돌아가셨다. 이후 구급차로 또 다른 병원의 장례식장으로 옮겨졌고, 그렇게 한 달 동안 총 세 번의 구급차를 탔다.


구급차를 향한 작은 기도

멀리서 황급히 달려오는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에, 앞서가던 차들이 ‘모세의 기적’처럼 길을 가르며 양보한다. 촌각을 다투는 구급차 안에서 두 갈래로 길이 열리는 광경을 목격할 때의 소회는, 마치 생사의 기로에서 빛의 통로가 트이는 듯하다.



도로 위에 수많은 빚을 진 듯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차 사이를 빠져나간다. 트라우마가 힘든 기억만 남기는 것은 아니다. 지난 과정에서 받았던 감사와 배려 또한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보답이라 하기엔 부족하지만, 나 역시 운전 중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미리 길을 내어둔다.



119 구급차가 동네를 벗어난 지 한참이 지났지만, 아직 미세한 심장의 두근거림이 여진처럼 남아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여러 해가 지났어도, 구급차를 보면 모든 순간이 정지되고 가슴 한 켠이 저려오며 숨이 눈덩이처럼 뭉친다.



간호사였던 친구조차 아버지를 여읜 후 3년 동안, 구급차만 지나가도 길 위에서 울었다고 했다. 눈앞을 쏜살같이 스치는 순간조차, 지난 기억은 살아 움직이듯 생생히 되살아난다. 다시 한번 깊게 숨을 몰아내 쉬고, 구급차를 향해 두 손 모아 기도드린다.



제발, 아무 일 없이 집으로 무사히 돌아가소서.



119 구급차가 다급히 도로를 빠져나간다.




2023. 4. 28. 오마이뉴스 <배우 차유진 에세이> 게재
2025. 9. 1. 글 개정. <브런치>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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