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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ura Jun 24. 2024

불필요를 삶으로 증명하겠다

길거리에서 만난 어떤 할아버지와의 대화



9일간 머물렀던 스트라스부르 길거리에서 유독 낯설거나 유독 특이하게 다가오는 건물을 그리며 꽤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밤이 되면 어떤 색으로 밝아질지가 궁금한 가로등을 그리던 중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 한분이 말을 걸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스트라스부르에 오래 살던 분이었고, 젊은 시절 파리보자르에 다녔다고 하였습니다. 아마 길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모습에 흥미가 생겨 말을 걸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작업을 자주 하지 않지만 예전에 달리의 친구였다고도 하였습니다. 사진에 관한 대화를 하며 모든 대화 내용을 완전히 이해한 건 아니지만, 30분간의 대화 끝에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불필요를 나의 삶으로 증명하겠다”는 말이었습니다.



Strasbourg, 2024 / 사진출처 본인


사진에 관한 길지 않은 대화 중 여전히 필름사진을 찍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몇십 년째 필름을 찍고 절대 디지털카메라를 쓰지도, 휴대폰을 쓰지도 않으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꼭 필름으로 모습을 담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은 휴대폰을 이미 몇십 년 전부터 쓰기 시작했으나 난 그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불필요를 내 삶을 통해 증명하고 싶다. 지금까지 가능했고 앞으로도 가능할 것이다”라는 말이 가장 인상 깊게 남았습니다.


이 말은 곧 스스로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오더라고요. 나의 삶은 무엇을 증명하고 있는지. 나의 삶 자체가 무언가를 증명해 낼 수 있다면 삶이 그 자체로 너무도 풍성해질 것 같만 같았습니다. 몇십 년쯤 뒤에는 삶이 증명하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 부끄럼 없이 세상에 꺼내놓을 수도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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