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리히 호수에서 수영하면서 ••
수영이 어떤 인간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면 무엇이 될 수 있을까요?
수영을 하는 건 공기와는 다른 중력을 느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공기 세계의 움직임과 물속 세계의 움직임은 엄청나게 달라서 움직임 자체, 중력 자체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내가 사는 지구에는 이런 감각을 느끼며 살아가는 생명들도 무수히 많다는 사실에 그러한 감각을 공유함에 기뻐할 수 있습니다. 몸을 완전히 물에 담갔을 때의 묘한 일렁임, 물속을 들여다볼 때 시야의 확장, 아주 바닥으로 잠수할 때 약간의 답답함과 동시에 자유로움, 그리고 몸을 뒤집어 하늘을 보고 누웠을 때 물과 몸의 경계에 느껴지는 차가운 간지러움까지.
하는 수 없이 중력을 받으며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호수나 바다 역시 중력에 의해 물이 흐르고 모인 곳입니다. 하지만 물의 세계에서 우리는 적어도 어떠한 장비의 도움 없이 두둥실 떠다닐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해수면에서 바닥까지 가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지요. 저는 가장 낯선 감각을 느끼고 싶을 때면 수영을 합니다.
땅 위에서도 인간의 몸이 아주 작은 것은 마찬가지인데 물속에서는 유독 몸이 작게 느껴집니다. 또 반대로 감각에 집중하다 보면 몸 하나가 세계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아주 작아졌다가 거대해지는 몸에 기대어 헤엄치는 것은, 세상을 마주하는 유일한 스스로의 물질이 몸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일입니다.
아주 차가운 취리히 호수에서 수영을 하고 물가에 앉아 몸을 말릴 때에는 이례 없는 평화와 고요가 몸 주변을 돌아다녔습니다. 저 깊어 보이는 곳에서도 사람들은 수영을 하고, 물가에서는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누워서 각자의 방식대로 시간을 보내고. 중요한 건 무엇을 듣거나 보거나 읽거나 만지거나 먹지 않고 그저 시간을 보내는 법을 아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모두가 고요를 보내는 법을 잊은 줄만 알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