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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ura Jun 17. 2024

도시의 건물을 그리는 일의 12가지 장점

스트라스부르-드레스덴-라이프치히



1. 한 건물을 오래 바라본다. 오래 바라본 그 장면이 기억의 한 자리를 차지한다.


2. 한 곳에 오래 머무른다. 여행을 하면서는 시간이 아까워서, 혹은 보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또는 정적인 시간을 보내는 법을 몰라서 한 장소에 머무르며 그 주위를 둘러싼 것들을 보기 어려울 때가 많다. 사람들의 차림새와 말소리, 교각의 모양, 나무의 종류, 냄새, 건물의 외관, 신호등의 모양, 문고리, 바람의 온도, 도시의 속도 등. 순간을 그리는 것은 고요를 보내는 법이 어려운 이들이 작은 고요를 누리는 방법이다.


3. 면밀히 바라보아 작은 차이점과 디테일이 보이기 시작한다. 다른 건물과의 구별점과 도시의 특징이 눈에 들어온다. 걷거나 차창밖의 건물을 바라볼 때, 이는 틀림없이 재미가 된다.


4. 기억을 대신하는 건 대체로 글과 사진인데, 이 두 매체와 더불어 기억을 담당하는 또 다른 정성스러운 매체가 된다. 길거리에서 하는 스케치는 글보다는 구상적이고 사진보다는 추상적이다. 그리지 않은 나머지 부분은 미래의 상상에 맡겨둔다.


5. 지붕의 기울기나 창의 크기를 통해 기후나 날씨를 짐작해 본다.


6. 건물 내부에 흘러갔을 이야기와 오갔던 대화, 시간의 흔적을 상상해 본다. 아주 오래된 저 벽 뒤에는 어떠한 사연과 사건과 이야기가 있을지, 있었는지.


7. 어딘가에 앉거나 서서 건물과 종이를 번갈아보며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나의 시선이 닿는 곳에 지나가던 사람들의 시선이 닿는다. 내가 보는 곳을 낯선 이들이 보게 할 수 있다.




8. 도시를 기억하는 아주 오래된 방식이다.


9. 집중할 수도 있고 동시에 밀린 잡생각을 처리할 수 있다.


10. 도시의 소리가 규칙적인 멜로디처럼 들리기 시작한다. 공간에 안착한 기분이다.


11. 평면의 종이가 입체성을 지닌다.


12. 일상에서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생각하는 일이 드물다. 거주용 건물을 바라보고 그리다 보면 내가 살던 곳과 완전히 반대의 창문이 달린 집에서도, 파이프가 달린 집에서, 세모의 지붕 바로 아래에서도 누군가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세상의 사람들은 내가 짐작하던 것보다 훨씬 다양한 삶의 공간을 이루며 살아가며, 아직도 보지 못한 집의 형태와 건축 양식이 가득하다. 집과 집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는 세상의 입체성을 보여주는 것 중 일부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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