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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창고 Sep 04. 2015

히틀러의 철학자들 - 이본 셰라트

철학도 학문도 언제든지 권력의 하수인이 될 수 있다

* 한줄평 : ‘흔적’은 그 크기에 상관없이 쉽게 잊혀진다. ★★★☆ 


1. 굉장히 식상한 소재를, 뭐하나 새로울 것 없이 평이하게, 팩트들을 재편집해놓은 커다란 임팩트는 없는 책입니다.


요즘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이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잘 꿰어야 보배라는 격언인데요, 이 책은 솔직히 새로울 것도 별로 없고 치열함이 별로 보이지도 않으며, 게다가 위험한 것이 context 기반의 사료 해석이 아니라 text만을 취해서 전혀 다른, 조금은 너무 주관적인 결론을 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기도 합니다.

조금은 위험하고 읽는 이에게 편견을 심어줄 수 있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2. 예를 들어, 한나 아렌트와 마르틴 하이데거가 불륜관계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데 아렌트가 하이데거의 친나치 경력에도 불구하고 그를 못 잊어서 유대인으로서 변절(?)

했다는 식의 조금은 위험한 결론을 내리기도 하는데요, 이것은 타블로이드 및 그 당시 황색

언론들이 감정적으로 대응했던 것을 그대로 옮겨다가 결론을 삼은 것은 아닐까 합니다.

단편적인 사료를 통해 얻은 정보를 너무 확대 해석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실제로 그녀의 대표작인 ‘전체주의의 기원’과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같은 저서들은 대단한

역작이면서 날카롭게 반유대주의 및 나치즘에 대해서 고찰하고 있는데요, 그렇게 쉽게 결론을

낼 수 있다는 것이 참 대단한 용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자보다는 아렌트가 더 뛰어난 학자

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저자도 그 부분을 인정하기는 하는데, 오락가락 합니다.


3. 그런데 이 책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줍니다.

개인적으로 나치즘과 우리 나라 친일파들의 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데요, 저자는 저와 비슷한 고민을 다음과 같이 화두로 던집니다. 


그 누구도 우리가 배운 철학사상 가운데 일부가 나치 부역자들의 머릿속에서 나온 사상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는다. 


독일인들이 나치 치하 역사학자들의 부역에 대해서 관대한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히틀러에 부역한 철학자들 및 지성인들은 자국의 이익 및 발전이라는 대의명분으로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었기에 일정 부분 할 말이 있었을 것 입니다. 하지만, 우리 나라는 다릅니다.

일제 때 앞장서 협력한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이익을 구한 사람들 입니다. 이것은 큰 차이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했던 정권을 비판적으로 성찰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사상에서 어떤

가치를 찾을 수 있겠는가?


만약 우리가 학창시절에 배운 교과서에 나치주의자들 및 친일파들의 사상과 학문적인 업적들이 전부 다 배제된다고 했을 때, 우리 학문체계에 큰 문제가 생길까라는 질문을 위의 구절들을 읽으면서 해봤습니다.

글쎄요,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위와 같은 문제제기였습니다.

답은 없으나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만으로도 그 값어치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4. 히틀러의 연설문은 갈수록 니체의 저서에서 제멋대로 가져온 사상들로 뒤범벅되었다. 히틀러는 우선 고대에 대한 니체의 사랑,

특히 고대 그리스에 대한 니체의 숭배를 흉내 냈다. 

에른스트 한프슈탱글의 말처럼 히틀러는 “천재라는 술을 만들어내는 사람이기보다는

천재라는 술을 섞는 바텐더에 가까웠다. 그는 자신에게 제공된 독일 전통의 모든 요소를

자신만의 비법을 통해 한데 섞어서 사람들이 마시고 싶어 하는 칵테일을 만들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속담이 있는데, 이것저것 잡다하게 끌어다가 본인에게 유리하게

윤색하는 것을 지식인들 및 지성인들은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하며, 당대에 벌어지는 그런

흐름에 대해서, 특히 정치인들에게 목숨을 걸고 그러면 안 된다고 외칠 수 있는, 선지자적인

야성이 필요합니다.


지식의 편집이 의미가 있으려면 우선 편집 대상들에 대한 철저한 공부 및 이해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그 다음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를 갈고 닦아야 하며, 이런 과정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지식들을 편집해야 합니다. 본인의 합리화를 위한 광적이고 임의적인 지식의 편집은 파멸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5. 흔적은 식는 법이다.


정말 그렇습니다. 흔적은 아무리 당사자들에게 크고 무겁고 슬프게 느껴져도 제3자들에게는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그냥 한때의 큰 에피소드일 뿐 입니다. 히틀러의 ‘흔적’도 식어갔습니다. 친일의 흔적도 식어갔습니다.

말이 좀 빗나가는 것 같기는 합니다만, 요즘 ‘세월호’에 대한 정부 및 사람들의 마음가짐과

 표현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정서가 대한민국처럼 강한 나라,  아마도 없을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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